사실 익숙하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았던 일이었다.
우리끼리는 공공연히 부르던 바로 그 이름, ‘진.상.환.자’. 그런데 막상 언론에서 이를 언급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니, 머리칼이 ‘쭈뼛’ 곤두선다. 알고는 있더라도 그렇다고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 되는 비밀-마치 해리포터에서 금기시되었던 볼드모트라는 이름처럼-을 발설하여 백일하에 드러낸 듯한 느낌이다.
지난달 16일 MBC 9시 뉴스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소위 ‘진상환자’라고 부르는 환자 블랙리스트를 공유하고 진료 거부 방법 등을 유포한 치과의사들의 행태를 지적하자 최근 복지부에서는 치협 측으로 ‘치과 진료거부 관련 지도·점검 협조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온 바 있다. 진료거부 행위가 의료법에 저촉되는 것이므로 회원들을 지도·감독하여 달라는 것이 골자이다.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게 이런 것일까. 한 고비를 넘기면 또 한 고비가 찾아온다. 좀 잠잠해졌다 싶으면 또 일이 터진다. 의사의 권력 남용이니,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본다느니, 의사가 더 진상이라느니 등등 매몰찬 힐난의 글이 인터넷상에 올라오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환자들이 이러이러한 행동을 해서 힘들다”는 단순한 신세한탄을 넘어 거짓말을 동원한 구체적인 진료 거부 방법이 오갔다는 점에서 환자들의 분노와 비난은 사실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바른 절차와 사유를 갖춘 정당한 환자 리퍼와 진료 거부까지도 이제는 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점이다. 환자들이 ‘혹시나 내가 돈 되는 환자가 아니라서, 귀찮아서 나를 리퍼하는 것은 아닐까, 진료가 힘들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것을 생각하니, 어떻게 그 환자들을 이해시켜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우리가 환자들을 먼저 밀쳐냈으니, 밀쳐낸 그 힘이 그대로 돌아와 환자들이 우리를 밀쳐내는 것도 어찌 보자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A가 B에게 힘을 가하면 B역시 A에게 똑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있다. 인간관계에도 이러한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니 이번 일 역시 어쩔 수 없는 결과로 우리에게 그대로 되돌아올 것이 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해지기도 한다. 환자가 때리면 때리는 대로 고스란히 맞고 그 힘을 받아낼 수밖에 없는 우리 치과의사들과 치과 종사자들은 대체 어디로부터 어떻게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진상환자’라는 용어를 우리가 언제부터 말하기 시작했던가. 터무니없는 할인을 요구하고, 제멋대로 진료 스케줄을 바꿔 다른 환자들에게 불편을 주는, 그리고 날카로운 말들로 의료진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환자들을 가리켜 우리는 ‘진상환자’라고 불렀다-이번 사건에서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게 쓰인 것 같지만-.
문득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를 ‘감정노동자’로 일컬었던 한 신문기사가 떠오른다. 물론 선서할 때 이마저도 감내하겠노라 맹세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과거와 달리 “의사는 강자, 환자는 약자”라는 논리가 약해지고 있고, 그 힘의 균형 또한 점점 달라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번 사건은 분명, 우리 스스로 자책하고 반성하여야 할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환자들의 펀치에 펀치로 맞설 수 없는 우리들의 ‘회피와 거부’라는 이름의 반작용은 아니었는지에 대해서도 한번쯤 고민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