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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신문 논단] ‘내게 거짓말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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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논설위원

원래 거짓말이란 듣는 사람이 거짓말인지 모르게 해야 한다. 나중이든 도중이든 거짓임이 드러나면 거짓말의 화자는 신뢰를 잃고 관계의 유지나 도모하던 이익을 얻는데 실패하게 되고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 된다. 그런데 장정일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라는 소설 제목으로 이미 듣는 사람이 알고 있으니 거짓말을 해 보라는, 소위 ‘해볼테면 해보라’는민망스러운 메시지를 담았다. 당연히 내용에서도 그 시대의 윤리적 통념을 넘어서는 주제와 표현을 이유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아 물의를 일으킨 작품이었다. 이를 원작으로 장선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거짓말(1999’이란 영화를만들었지만, 원작의 센세이셔널한 폭발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소설 발표 후 15년이 흐른 2011년, 그 맹랑한 제목이 잊힐만할 때쯤, 전혀 다른 줄거리임에도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똑같은 제목으로 모 공중파방송에서 거짓말과 스캔들로 버무린 뻔한 내용의 드라마가 두 달 정도 방영됐다. 11년쯤 지난 2022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Tell me lie)’라는 동 제목의 미드 시즌 1이 시작됐고, 2024년 시즌 2를 지나올해 시즌 3까지 이어지는 대박을 터뜨렸다. 위 작품들을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새로운 장르의 시도라 포장하고 싶은 견해도 있겠지만, 대부분 감각적이고 부정적인 결말로 마무리되는 ‘막장 드라마’류로 분류해도 무방할 콘텐츠들이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필자가 흥미롭게 주목하는 것은 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카피나 표절이라는프레임의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이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제목을 반복해서쓴다는 사실이다. 이는 많은 이들(대중)이 상대방이 거짓말을 할 거라는 전제로 소통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그 정도의 거짓말은 그다지 낯설거나 놀랄 일도 아니라는 암묵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이 제목에 자꾸 꽂히는 거라고 짐작해 본다.

 

거짓말은 개체의 안전과 이익, 행복의 실현에 불리한 정보로 작용하므로, 어떤 말을 들으면 그 내용의 거짓 여부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의 본능이다.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관련 현장이나 당사자를 찾아가는 게 제일 분명하겠지만, 그 또한 만만치 않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므로 또 다른 관련 진술들을 찾다가 거짓과 진실들 사이에서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특정 실험모델에서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6배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는 실증적 연구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듣게 되는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그러므로 거짓말에 대한 집요한 확인의 시도는 매우 중요한 일인데, 이 절실함에 대해 극적으로 표현한 영화의 한 장면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영화 ‘모범시민, 2009’에서 주인공 클라이드 쉘튼(제라드버틀러扮)이 법정에서 변호사 없이 피고인 스스로를 변호하면서 ‘미국 대 정부(United States v. Fernandez), 1994년 제4항소법원 판례입니다’라며 존재하지 않는 가짜 판례를 인용하여 자신이 석방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어리버리하고 오만한 판사는 그의 주장에 설득되어 보석을 허가하려는 장면에 이어지는 반전은 참으로 극적이고 시사하는 바가 컸다. 모름지기 무엇을 잘 모르겠다면 아무리 급박하고 수고롭더라도 확인해야만 하고, 주변의 시선이 부끄럽더라도 반드시 확인하려는 겸손과 진정성을 가져야 악의적 거짓말이 발붙일 수 없다.

 

‘좋은 거짓(상상력)’을 믿게 하는 능력은 인류가 강해지고 생존할 수 있었던 놀라운 능력이라고 유발 N.하라리는 설명한다. 이 능력은 상상력과 언어를 통해 만들어진 공통된 허구(신화, 종교, 역사, 문화 등)를 공유하는 해당 집단의 소속감, 유대감, 결집력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라 하였다. 우리는 서로 말하고 들으면서 마음 속에 여러 생각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모이고 흩어진다. 간디(Mahatma Gandhi)는 눈에는 눈으로 식으로 대응하다 보면 결국 온 세상이 눈멀게 된다고 했다. 이젠 거짓말로 대화해보자는 듯한 제안인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온 세상을 거짓말로 뒤덮을 것이다. 이젠 정말로 대화해보자는 제안을 서로 해보는 건 어떨까? 그 제안은 ‘내게 정말을 해봐’가 아니라 ‘내가 정말만 할게’여야 할 것이다.

 

정말과 거짓말의 경계가 모호하기 쉬운 선거철이다. 간절히 부탁하는 바, 후보자들과 지지자들 모두 사실에 기반한 진실의 언어로, 희망을 담은 선한 상상력을 빚어내고, 이를 의료인다운 태도와 절제된 언어로 표현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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