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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치과생활

난독증과, 해도 안되는 것과, 하면 되는 것 또는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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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문지현 원장(정신의학과전문의, 미소의원)

부끄러운 고백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생각해 보니 안 부끄러운 고백이라는 것 자체가 없을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도 들기는 드네요. 그건 제가 노래를 무척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겸손에서 비롯된 발언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다함께 찬송가를 부르는 시간에 제가 벅찬 마음으로 크게 노래하면 옆에 앉은 가족들이 돌아보면서 큭큭 웃습니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는데, 이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하게 되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아닙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는 나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줍어하던 사람이 등 떠밀려 나와서 노래를 하는데 좌중을 휘어잡는 노래 솜씨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수줍어하던 사람이 등 떠밀려 나와서 노래를 하는데 본인도 민망하고 괴롭지만 듣는 사람들이 민망하다 못해 더 안타까워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난독증이 제목인데 뜬금없이 웬 노래 못하는 고백이냐고요? 난독증(dyslexia)과 음치(amusia)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나타나지만, 뇌 기능의 특정 부분에서 발생하는 처리 결함이라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을 음치라고까지 말하는 건 마지막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글을 잘 못 읽는 것과 노래를 잘 못 하는 것은 서로 닮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난독증과 음치라는 두 현상 모두, 선천적 또는 발달상의 문제로 인해 특정 정보를 처리하고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인지적 또는 신경학적 장애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우선 난독증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난독증은 특정 학습장애(specific learning disorder)라는 병의 한 종류입니다.

 

 

학습장애는 말 그대로 ‘공부를 힘들어하고 못하는’ 병입니다. “엇, 혹시 우리 아이가?” 라고 생각하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런데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연락받은 것이 아니라 ‘아, 우리 애는 왜 내가 하던 것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하지?’ 하는 속상함 끝에 하신 생각이라면, 아마 학습장애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보통 학습장애는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할 때,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본 선생님들이 부모님에게 알려주면서 진단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선행학습의 왕국임을, 부모님이신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부터 교육을 통해 읽고 쓰고 셈하기를 마치고 들어가기 때문에, 초등학교 들어가서 선생님이 발견하기 이전에 각종 다양한 사교육 과정에서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학습장애에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읽기 장애(앞에서 말한 난독증의 정확한 명칭입니다), 쓰기 장애, 수학 장애입니다. 읽는 것과 쓰는 것, 수학(산수)은 모두 일종의 기술입니다. 기술을 배우는데 잘 되지 않는 것이 병입니다. 3가지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읽기 장애이며, 우리나라 역학 연구에 따르면 4-10%의 유병율을 가진다고 합니다. 여자애들보다 남자애들에게 2-3배 정도 많으며, 한 가지 장애만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다른 장애를 동시에 갖고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학습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머리가 나쁘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능이 낮아서 읽기 쓰기를 못하면 지적 장애(intellectual disability, 지적 발달 장애 라고도 합니다)로 진단을 하지요. 학습장애를 진단받는 아이들은 지능이 정상이지만 특정한 기술, 읽기라든가 셈을 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읽는 것과 듣는 것은, 어떤 면에서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뇌의 영역을 사용합니다. 마치 제가 말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심지어는 강의를 할 때에도 전혀 막힘없이 술술 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지만 막상 노래를 하라고 하면 입이 꾹 닫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도록 격려하는 이유는 많이 있지만, “엄마 아빠가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지! 나중에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하는 거지!” 같은 대사 안에 부모님의 바람이 다 들어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학습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공부를 안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은 게 아닌데 성적이 떨어지다 보니 이후 더 발전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잃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삶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의 노래처럼, 잘 못하는 건 갈수록 더 하기 싫어집니다. 공부를 못하니까(대부분의 공부가 읽기와 쓰기를 토대로 한다는 점을 기억해 보세요) 공부를 하기가 싫어지는 겁니다.

 

자, 이야기가 옆길로 샜네요. 다시 난독증, 더 정확하게는 읽기 장애에 대한 설명으로 돌아갑니다. 읽기 장애를 가진 사람은 글씨와 소리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이 안 됩니다.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음운 인식 (phonemic awareness) 능력의 부족’이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언어의 소리 단위인 음소(자음, 모음)를 지각하고 조작하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시죠. 보통의 우리는 고양이, 하면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단어 한 덩어리로 읽으면서, 이미 머릿속에는 고양이의 이미지와 특성까지 떠올립니다. 이건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의 엄마 아빠가 정말 열심히 우리들에게 “고양이, 고. 양. 이. 고양이가 야옹~”처럼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고양이’란 단어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던 그 옛날을 떠올려 볼 수 있으세요?

 

또는 우리 아이들이 한글을 깨우쳐 가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처음에는 ㄱ+ ㅗ+ㅇ+ㅑ+ㅇ+ㅇ+ㅣ 식으로 분해해서 읽고 쓰는 법을 익혀 갑니다. 이렇게 분해하는 작업을 해독(decoding)이라고 하는데, 글자를 소리로 연결하는 해독이 안되는 것은 읽기 장애의 핵심 특성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읽기 장애 아이들에게 고양이라는 단어를 읽게 하면 ‘기야고’ 또는 ‘양이고’처럼 읽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아이도, 어른도 멘붕에 빠집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고양이가 야옹, 은 알겠는데 기야고는 또 뭐지?’ 하는 거고, 어른 (대부분의 경우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렇게 쉬운 단어도 못 읽는 거야??’ 하는 겁니다.

 

“우리 아이가 음운 인식 능력이 부족하구나. 우리 아이를 잘 도와줘야겠다.” 이렇게 흘러갈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요. 그렇지만 당황하고 속상한 엄마 아빠는 대부분 “이게 왜 기야고야! 고양이지!” 하면서 아이를 야단치기 쉽습니다. 그러면 똑같이 당황하고 속상한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읽는 시도를 하는데 “양.이.고...”처럼 읽게 되기가 쉽죠.

 

기어들어가는 소리... 라는 부분을 쓰는 순간에, 갑자기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오 솔레미오’를 부르던 제 모습이 떠오르네요. 얼굴이 빨개져서 모기만한 소리로 “오 솔레미오~ 스탄프론떼아떼(?)” 쥐어짜는데 음악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던 기억. 자리로 들어가서 앉는데 툭 던지는 말씀, “반장, 연습 안했어?” “... 아뇨. 했는데요.” 맞습니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제 딴에는 말이죠. 그런 저와는 달리,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우리 반 합창 지휘자인 애는 얼마나 노래를 잘하던지. 실기 시험을 보는 중이란 걸 잊을 정도로, 칸초네의 물결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두 빠져들 만큼 탁월하게 아름다운 '오 솔레미오'를 선보였습니다. 노래를 마친 뒤 인사할 때 모두 함께 열혈 박수를 쳤습니다. 그 때 제가 한 생각이 바로 이겁니다. “아, 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

 

다행히 저는, 노래를 잘 못해도 고작해야 가족과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 것 외에는 큰 문제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만, 읽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삶은 그렇게 녹록지가 않습니다. 단어 하나를 읽으려고 해도 더듬더듬 하는데 그걸 문장으로, 한발 더 나아가 문단으로 읽어야 한다면? 그리고 읽는 데서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이해를 해야 한다면? 현직 교수님들도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수능 국어를 공부해야 한다면? 아, 물론 대학은 안 가도 됩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사주신 최신형 휴대폰, 다 아는 기능 말고 다른 기능은 없나 보려니까... 기능 설명 영상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보는데 중요한 내용들은 자막 처리로 들어갑니다. 네, 또 읽고 이해를 해야 하는 거지요.

 

학습 장애라는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공부를 못 해서 큰일이라기보다, 아이들의 마음이 엉망이 되는 게 더 큰일입니다. 학교에서 성적이 뒤떨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 기가 죽습니다. 의욕을 잃어버리고 의기소침해집니다. 만성적인 절망감과 함께 친구 관계도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분명히 배움에도 불구하고 공부 못하는 친구에 대한 또래의 차별이 존재하니까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증후군(ADHD), 의사소통 장애, 품행 장애, 우울증 등을 앓을 가능성도 커집니다. 청소년으로서 학습장애를 갖고 있다면 학교에서 중도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성인으로서 학습장애를 갖고 있다면 취업과 사회 적응에 문제가 커집니다. 그래서 이 글 제목의 뒷부분이 들어갔습니다.

 

 

“하면 되는 것, 또는 해야만 하는 것.” 학교 성적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삶을 위해서 학습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해도 안 되는 거 아니냐고요? 물론 제가 지금부터 성악 레슨을 받는다고 해도 고등학교 시절의 지휘자 친구처럼 노래를 하기는 힘들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요? 읽기 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습 장애를 갖지 않은 90%의 아이들처럼 유창하게 글을 읽고 학교에서 잘 나가지는 못하겠지만, 아이들의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한글은 영어와 마찬가지로 자모 문자 체계(alphabetic writing sys-tems)를 가지고 있는 언어라서, 글자와 소리의 대응 관계를 하나하나 학습해야 합니다. 읽기 장애와 같은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의 핵심 문제가 음운 인식이 안 되는 것이라고 했죠? 그래서 이에 대한 집중적 훈련, 즉 체계적인 파닉스(Phonics)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병이든 그렇겠지만, 일찌감치 발견해서 전문적인 지도와 심리 및 정서 지원을 병행하면 예후는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가벼운 정도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라면 초등학교 1-2학년 이후로는 보충 학습이 더 필요없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만 10세)까지만 진단되어도 적절하고 집중적인 치료와 교육을 통해 학습 능력이 향상되고 자존감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해도 안 되는 것’이 많은 세상이지만, 한편으로 ‘하면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시점에서는 ‘해야만 하는 것’이 있지요. 이건 학습 장애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다른 병도 그렇죠. 치과의사 선생님이 아닌 제가 제일 흔하게 알고 있는 치과적 병인 충치 같은 거요. 열심히 이를 닦아도 충치를 100% 막을 수는 없더라고요. 하지만 정기적으로 치과에서 검사하고 관리하는 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충치로 진단을 받았다면, 치료는 꼭 해야만 하는 것이 되지요.

 

읽기 장애를 포함한 각종 학습 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성적이 안 오를 수도 있습니다. 이게 ‘해도 안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를 한다든지, 제 시간에 학교에 등교하는 것 등은 ‘하면 되는 것’에 들어갑니다. 만일에 학습 장애로 진단이라도 받는다면? 열심히 치료를 받는 것은 ‘해야 하는 것’에 해당될 겁니다.

 

“제가 변경할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온함을, 제가 변경할 수 있는 일들을 변경하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점을 아는 지혜를 제게 허락하소서(라인홀드 니이버, 지혜를 구하는 기도)”처럼, 해도 안 되는 것은 평온하게 받아들이고, 하면 되는 것 또는 해야 하는 것은 용기 있게 하면서, 이 둘 사이의 차이를 지혜롭게 헤아리는 여러분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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