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 한 피부과 원장이 구속됐다. 의사가 불법으로 구속되는 사건이 충격적이지 않은 시대지만, 이번 사건은 그 행태가 기괴하다. 한 환자가 간단한 피부과 시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밤이었고 수술비용이 천만 원 이상 결제되었다고 주장하며 시작되었다. 환자는 이의를 제기하고 피부과 측은 환자 동의를 얻었다며 동의서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 동의서에는 삐뚤거리는 환자 서명이 있었다고 보도되었다. 환자가 약물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시술동의서를 받거나 추가 결제를 유도했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을 타며 유사한 피해자들이 많아졌고 이슈화되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더 큰 마약 장사 사건이 발각되었다. 프로포폴을 몇 회 이상 시술하는 것을 패키지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식으로 만든 메뉴판이 뉴스에 보였다. 원장은 의료 목적을 넘어 프로포폴을 반복적으로 투약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경찰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약 20명의 환자에게 360여 차례에 걸쳐 프로포폴이 투약되었으며, 마취가 필요하지 않은 비교적 간단한 시술에도 프로포폴이 사용된 혐의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 사건에서 이해되지 않는 한 가지 내용이 보인다. 약물에 취한 기면상태 환
최근 환자와 상담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환자들이 궁금한 것을 이미 AI에게 물어보고 답을 확인받으러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도 환자가 질문하면 직접 대답하기보다 AI에게 물어보고 그 대답을 환자에게 보여준다. 필자가 대답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모니터상에서 AI 답변을 보면 두 번 다시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점차 AI 답변을 점점 선호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표면적으로는 AI에 대한 신뢰성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몇 가지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첫째는 환자가 의사에게는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는 반면, AI를 신뢰하는 이유는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라는 느낌 때문이다. 의사가 치료방법을 설명하면 환자는 무의식적으로 의사의 설명이나 답변이 환자보다 병원이나 의사에게도 이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한다. 아무리 의사가 진심으로 설명하더라도 환자에게는 치료를 권하는 당사자 설명이라는 한계가 있다. 반면, AI가 같은 내용을 설명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환자는 AI를 특정 답변을 하는 이해관계자로 생각하지 않고 완벽한 객관자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내용이라도 의사보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차례 음식준비로 바쁠 때지만, 이번 추석부터는 간소화하기로 정해서 차분하다. 사실 추석과 설날에 지내는 차례는 유교 문화가 아니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불교의 다례식에서 유래되었다. 인도에서 신에게 향과 청정수 등 공양물을 올리는 문화가 불교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졌고 당시 중국에서 차가 매우 귀하였기 때문에 차를 올리게 되었다. 이런 중국불교가 신라로 들어오면서 다례식으로 자리를 잡았고 민간 풍습이 되었다. ‘다례’란 가장 귀한 차를 높으신 분에게 대접하는 의미다. 가장 높은 부처님부터 스승님에게 혹은 돌아가신 분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접하는 행위였다. 이런 풍습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해도 바꾸지 않았다. 고려 불교 대신 유교를 국교로 하면서 불교 풍습을 유교적으로 재해석하며 차례로 바뀌게 되었다. 유교에는 절대신이 없다. 조상님이 절대신적인 역할을 한다. 불교는 사람이 죽으면 윤회를 하는 개념이지만, 유교는 돌아가시면 육체만 없는 것이지 혼은 자손 곁에 머문다. 따라서 집집마다 사당을 짓고 위패를 만들어 혼이 머물 장소를 만들어주는 개념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사당을 만들 것을 수없이 어명
최근 1년 새 2명이 사망한 강남의 한 치과가 뉴스에 자주 오르고 있다. 국과수는 국소마취제인 ‘아티카인’ 독성 반응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하였다. 의무기록지에 75세, 체중 54㎏인 고령 환자에게 아티카인 16앰플을 투여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치과의사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한 가지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사실이 있다. 얼핏 국과수 보고만 보면 단순히 치과의사 개인의 단순 과실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사건이 한 개인의 실수로 생각되는 순간 본질이 왜곡된다. 개인적 실수라면 1회성으로 끝나지만, 구조적 문제라면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년 새 2명의 환자가 사망한 것은 우연이기 어렵다. 이 사건의 본질은 저수가 무한 경쟁이 낳은 공장형 치과 시스템의 구조적 위험성으로 보여 심각하다. 임상 현장에서 치과의사는 알 수 없는 알레르기 반응이나 독성 반응에 대한 원천적인 두려움이 있어 본능적으로 마취제를 조금씩 남겨가며 투여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환자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으로서 두려움과 최소한의 윤리적 경계심조차 작동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이 경계심을 마비시켰다. 결코 한 개인 의사의 무능이나 과감함 때문이 아니다. 저항할 수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2026년 사회문화 흐름’을 발표했다. 2025년 한 해 동안 뉴스와 SNS, 커뮤니티, 영상 플랫폼 등에서 수집한 5억3,800만 건의 온라인 데이터를 분석하여 2026년 6대 사회문화 흐름을 전망했다. 발표된 6대 흐름은 아래와 같다. 1) 인공지능(AI) 이후의 인간 중심 전환-AI가 인간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오히려 인간의 역할, 책임, 감정, 관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현상으로 단순히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서 “AI 시대에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로 관심이 이동한다는 의미 2) 나다움과 초개인화 시대-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취향·가치·개성을 중시하는 흐름 3) 웰니스 전환-건강을 병이 생긴 뒤 치료하는 것에서 벗어나 평소의 생활습관과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으로 특히 저속노화, 노후, 일상적인 건강관리 등이 중요한 관심사로 나타났다. 4) 절제와 실용의 소비 윤리-무조건 많이 소비하는 것보다 가성비, 실용성, 합리성, 필요한 만큼의 소비를 중시하는 흐름으로 소비에서도 과시보다는 효율과 삶의 균형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 5) K-컬처의 자부심과 감정 경제
남양주에서 10대 딸이 가출을 말리는 어머니에게 커피포트의 끓는 물을 부어 머리와 다리에 화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다. 최근 존속 상해사건·사고가 많다. 청주에서는 술 마실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80대 노모를 폭행한 50대 아들이 실형을 받았다. 지방 아파트 복도에서 20대 아들에게 70대 어머니가 흉기로 살해된 사건도 있었다. 또 치매를 앓는 80대 노모가 밥과 약을 제때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50대 아들에게 수개월 간 상습적으로 맞다가 결국 숨진 사건도 있었다. 부모 재산을 노리고 친모를 약물로 살해하거나, 잔소리한다는 이유로 부모를 향해 무차별 폭력을 행사한 경우도 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부모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최근 4년째 해마다 50건 안팎이다. 더구나 가족사건이다 보니 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 보고되지 않은 사건은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어느 시대든 나쁜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끓는 물을 부을 정도로 악하지는 않았다. 과거 먹을 것이 없었던 후진국 시절과 개도국 시절에도 패륜은 있었지만 이렇게 악하지는 않았다. 낳고 길러준 부모 머리에 끓는 물을 붓고 폭행을 저지
요즘 영화 오디세이가 한창이다.《일리야드(Iliad)》와《오디세이(Odyssey)》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인류 서양 문학의 최고 고전으로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준다는 황금사과로 시작된 분쟁은 결국 트로이 전쟁을 유발했다. 전쟁영웅 아킬레우스가 죽기 전까지가 일리야드고, 트로이 목마를 만든 장수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귀향하기까지가 오디세이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오는 데 10년이 걸렸다. 반면 집에서 기다린 아내는 10년 전쟁을 포함해 20년을 기다렸고 결국 남편을 만나 왕위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신화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있다. 중국 서유기 주인공인 현장법사는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출발해 인도를 다녀오는 데 16년이 걸렸다. 사마천의《사기(史記)》〈진세가(晉世家)〉에 진나라 왕자 중이는 계모의 모함을 피해 해외를 떠돌며 왕이 되기 전까지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였다. 불교 선종의 시조 달마조사는 벽만 바라보는 면벽(面壁) 수행을 9년 동안 하며 때를 기다렸다. 이렇게 무엇이 이루어지기까지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는 경
사람이든 동물이든 집단이 형성되면 룰이 생기고 권력이 탄생한다. 더불어 권력을 견제하는 힘도 같이 생겨서 균형을 잡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권력이 강해지거나 견제의 힘이 상실되어 힘의 균형이 깨지면, 그 집단은 망하고 새로운 권력이 탄생하는 것이 자연계 이치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권력을 선출자에게 위임한다. 위임받은 권한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이 책임은 권력이 커질수록 더욱 무거워진다. 하지만 최근 많은 지방자치 현장에서 이런 민주주의 원칙이 뭉개지고 아직도 후진국 행태를 보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독 지방의회 시의원의 성비위사건이 많다. 전형적인 권력 남용의 행태다. 대전, 안동, 부천, 의왕 시의원의 성추행사건과 청주시의원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이 있었다. 택시비를 안내고 지구대에서 주취난동을 벌인 춘천 여성시의원의 행태는 성별을 넘어 그들의 도덕적 해이와 권력에 만취된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정윤기 사건에서 보인 경찰 조직의 제 식구 감싸기 모습과 ‘거제왕’으로 불린 지방 경찰 간부의 행태는 생각보다 깊숙이 썩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 행위와는 다른 문제다. 일부 사건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였고, 일
최근 ‘한국인 정신건강, 세계 최하위권…18개국 중 17위’라는 보도를 접했다. 보험회사 AXA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18개국 성인 1만9,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한국인의 정신건강 지수는 58.5점으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전체 평균은 61.8점이었으며, 태국이 66.5점으로 가장 높았다. 경제적 부담과 업무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정신건강 문제를 상당수가 전문가보다 AI에게 상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의 조사 결과만으로 한 나라의 정신건강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실을 보면 정신건강이 낮게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예측된 필연적 결과다. 한국 사회는 세계적으로 경쟁이 매우 치열한 사회다. 3세 고시로 시작되어 학교는 배움의 장소가 아닌 성적을 올리는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 대학 졸업은 취업을 위한 경쟁이다. 직장에서는 승진과 소득에 비교되고, 결혼 후에는 주거와 재산에 비교된다. 중년은 자녀 교육과 사회적 성공에 치열하고, 노년은 은퇴 자금에 고민한다. 결국 무덤에서 요람까지 평생 지속된다. 특히 한국 사회는 ‘남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사회적 비교 심리가 강하
역사적으로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살아본 시대는 없었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전쟁 아니면 흉년으로 늘 굶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것에 비하면 지금은 굶는 사람은 없으니 엄청난 발전이다. 하지만 기준이 다르기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주식시장은 변동성이 역대급이고, 환율은 1,500원 심리적 저항선을 넘었다. 영끌한 2·30대가 끌어올린 집값과 과도한 대출에 불안감이 큰데 금리가 올랐다. 자영업자는 매출 감소와 비용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100만명 이상 폐업했다. 설상가상으로 미·이란전쟁은 재점화되어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혼란할 때 개인은 휩쓸리기 쉬워서 정신과 마음의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경제적 어려움 자체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심리적 불안이 더 커진다. 인간의 뇌는 현실 위험보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되었다. 경제가 불안하면 노후가 걱정되고, 주식이 떨어지면 재산이 줄어든다. 뉴스를 보면 걱정이 커지고, 걱정을 잊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찾는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정보를 찾지만, 오히려 넘치는 정보가 더 많은 불안을
요즘처럼 주식시장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아침에 스마트폰을 열고 웃다가 오후에 후회를 한다. ‘영끌’로 레버리지에 투자한 사람이라면 주가의 작은 움직임조차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정선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사람의 심리와 놀랄 만큼 유사하다. 물론 주식과 도박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투자하는 사람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도박꾼 마음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경계가 모호한 점에서 심리학은 중요한 경고를 준다. 심리학에 ‘변동적 보상(Variable Reward)’이 있다. 보상이 일정하지 않고 언제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을수록 사람은 더욱 강하게 그 행동에 몰입하게 된다. 슬롯머신이 사람을 중독시키는 이유다. 대부분은 돈을 잃지만, 가끔 찾아오는 큰 당첨이 뇌 속 도파민을 폭발적으로 분비시키면서 다시 레버를 당기게 만든다. 주식시장도 이러한 심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어느 날은 하루 만에 수십 퍼센트가 오르고, 또 어느 날은 이유조차 알기 어려운 하락이 찾아온다. 한 번 큰 수익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실력으로 얻은 결과라고 믿기 쉽다. 심리학적 용어로 ‘과잉확신
한 유명한 코미디언이 미국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월드컵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는 지난해 미국에서 일어난 한국인 기술자들 추방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이와 유사한 일들은 있어왔다. 1492년, 스페인에서 알람브라 칙령(유대인 추방령)이 있었다.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며 국토회복운동을 완성한 스페인 왕정은 가톨릭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원했다. 왕정은 바로 스페인 영토 내의 모든 유대인에게 4개월 안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나라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당시 왕정의 눈에 유대인은 가톨릭 제국의 순수성을 해치는 불순물이자, 쫓아내도 그만인 외지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제로 추방당한 유대인들은 스페인의 금융, 상업, 의학, 행정 등 경제와 지식의 중추를 지탱하던 핵심 인재들이었다. 이들이 전 재산을 헐값에 매각하고 네덜란드, 영국 런던, 오스만 제국 등으로 쫓겨났다. 그 후 스페인의 경제적 혈맥은 순식간에 끊어졌다. 금융·상업 인프라를 상실한 스페인은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재정 파탄을 겪으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반면, 이들을 포용한 네덜란드와 영국은 전 세계 금융과 상업 중심지로 우뚝 섰다. 유사한 사건은 기원전 237년에도
최근 주식 시장이 9,000선을 넘나들며 전례 없는 호황과 극심한 변동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매일 밤낮으로 화면 속 빨간색과 파란색 그래프가 춤을 출 때,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요동친다. 이런 거대한 돈의 흐름은 개인의 일상을 흔들어 놓기 충분하다. 하루에 수 백만원이 오르고 내리면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주식 그래프와 수익만 수시로 체크하게 된다. 심지어 빚투가 극심한 지경에 이르러 주식이 투자라기보다는 투기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렀다. 원래 주식은 이런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업의 위험 분산과 자본의 대중화로 시작되었다. 주식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금융 공학의 정교한 계산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500여 년 전 유럽 한 나라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건의 나비효과에서 비롯되었다. 1492년 스페인에서 알람브라 칙령(유대인 추방령)이 있었다.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며 국토회복운동을 완성한 스페인 왕정은 가톨릭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원했다. 왕정은 바로 스페인 영토 내의 모든 유대인에게 4개월 안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나라를 떠나라고 명령하였다. 왕정의 눈에 유대인은 가톨릭 제국의 순수성을 해치는 불순물이자, 쫓아내도 그만인 외
5년 전 2021년 7월 2일, 유엔(UN) 총회 산하 상설 기구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한국 지위를 개발도상국그룹에서 선진국그룹으로 격상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그 후 반도체, 군수, 선박 등 첨단 산업은 물론이고 K-뷰티, K-팝, K-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눈부시게 발전했다. 심지어 라면, 김밥, 김과 같은 지극히 서민적인 먹거리 문화까지 수출이 호황이다. 바야흐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지구촌에 널리 알려진 시대다. 그런데 이런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교육이다. 문맹률이 최저이고, 교육 열기가 최고인 나라에서 교육현장은 붕괴되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참교육’이 세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기 위해 전권을 위임받은 감독관이 등장하여 학교폭력 가해자와 악성 학부모들을 거침없이 단죄하는 내용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이 드라마 인기는 지금 우리 학교 현장이 얼마나 깊게 병들어 있는지를 반증한다. 게다가 정작 학교 현장에서 들려오는 실제 이
한국사를 보다 보면, 역사에서 금해야 하는 ‘만약’이란 단어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최근 흥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처럼 세조가 쿠데타를 하지 않고 단종이 지속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급격한 왕권 약화로 또 한 번 역성혁명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새 왕조는 개화기 때 일본 메이지 유신처럼 개방하여 일제 강점기가 없었을까. 인조반정 후에 논공행상에서 이괄에게 일등공신을 부여하였다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없었을 것인가. 인조반정의 군사 총지휘자였던 이괄이 이등공신이 되면서 불만이 생겼고, 이괄은 국경 군사로 반란을 하여 국방 수비가 허물어졌다. 패한 반란 잔당이 후금으로 도망치고, 그들이 인조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청의 앞잡이가 되어 침략을 충동하며 정묘호란이 발생하였다. 만약 이괄에게 일등공신을 주었다면 정묘호란은 없었을 것인가. 역사의 한 시점에서 변화가 모든 것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 시점을 잘 잡는다. <재벌집 막내아들>이란 드라마는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 분당 땅 투기, IMF 등 미래 예측 등으로 돈을 버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처럼 개인에게도 ‘만약에’란 단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10년 전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