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IDS 2011 참관기지난 3월22일부터 3월26일까지 독일 쾰른에서 열린 제34회 International Dental Show (IDS)에 다녀왔다. 이 행사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SIDEX 전시장이 10개쯤 더 있다고 하면,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참가 업체와 관람객이 매회 증가하고 있으며, 3월 24일 저녁 뉴스에서는 당일 행사장에 참석한 인원이 20만명이 넘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야말로 지상 최대의 치과 박람회로, 전 세계 치과 종사자들이 모이는 축제였다. 여행업계의 추산에 의하면, 이번 행사에 우리 나라에서 500명 이상이 참가했다고 한다. 이 중 대부분은 치과 재료 수입상이며, 나머지는 치과의사, 치기공사, 치위생사, 기자, 그리고 기타 인원 등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 중 ‘기타 인원’으로 분류된 상당수가 IT 업계 종사자라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치과 관련 신기술, 특히 CAD/CAM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번 IDS의 가장 큰 이슈가 ‘치과의 디지털화’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전에 대부분 참가자들이 CAD/CAM 관련 상품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행사장 문
대한민국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평등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세상의 반은 남자, 세상의 반은 여자라는 가사가 있지만 그 반과 반이 서로 평등하기에 차별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입법화된 것은 세계적으로 볼 때도 그리 오래된 역사를 지니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의 반인 여성이 가정생활이 아닌 직장을 가지고, 더구나 전문직종에 진출하여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은 더욱 최근이라고 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여성의 전문직종에의 진출은 오래된 것이 아니다. 약 140년 전 1870년대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변호사면허를 받으려면 일리노이 지방법원으로부터 선량한 성품(good moral character)의 소유자라는 법원 증명서를 받아야만 하였다. Bradwell이라는 여성은 일리노이주의 변호사면허를 받기 위하여 그 증명서를 일리노이 지방법원에 신청하였는데 기혼여성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여 이의를 제기하자, 일리노이 대법원은 보통법(commom law)상 여성변호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고, 신은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최근 한 동굴 탐사 모험 영화의 대사에서 주인공은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는 순간 동료들에게 냉정한 이야기를 한다. 그 대원들 전체가 죽는다 해도 당사자들에게는 큰일이겠지만 자연 앞에서는 작은 먼지가 잠깐 지나가는 것 정도라고 담담한 태도로 말한다. 인간의 존재는 실상 푸념에 가까울 정도로 보잘것없다는 것이고 신(神)도 개입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인간의 표적이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몹시 미미한 흔적일 뿐이라는 고백이다. 결국 짧고 긴 시간을 흐르며 지나는 먼지 같은 일상(日常)이 실상 인간 존재인 것이다. 설령 세상에 드러나 주목을 받아도 무수한 유전자의 하나 정도로 유구한 흐름 속에 셀 수 없는 기억을 뒤로하고 떠돌이 생을 마치고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우리가 잘 아는 노래 중에 ‘먼지가 되어’라는 곡이 있다. 요절한 김광석이 불러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가사 내용 이상으로 그 노래를 부르는 여러 가수는 제목에 심취되었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뒤집어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존재에 대해 먼지 같은 의미를 떼어내지 못하고 사는 것이고 끝내 먼지가 되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우리는 거대한 쓰나미에 맥없이 밀려가는 문명의 이기들을 보았다. 엄
이웃 나라 일본이 자연재해로 허덕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방사능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인데 재난에 처해있으면서도 도움조차 쉽지 않은 터라 고립의 장벽이 쳐진 형국이다. 서로 가깝고도 먼 나라 그리고 애증이 역사와 핏줄 속에 얽혀 편하게 대하지 못하면서도 한편 한류에 열광하고 우리는 선진의식을 못내 아쉬워한다. 설령 종교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고 과거사 잣대로 들이대 보기도 하지만 인간이란 상황의 존재이므로 결국 우리는 모두 안타까움과 탄식을 금할 수 없다. 나아가 그들이 원했던 대륙의 관문, 이 땅에서 우리는 바다 건너 멀리 인류애와 공존의 둘레로 달래며 시간의 치유를 기다릴 뿐이다. 지난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 우리는 셀 수 없는 가축들을 이 땅에 생매장시켰다. 전염 방지를 위한 극단적 조치였다고 하지만 가장 비정한 방법으로 고통스럽게 축생들의 생명을 난도질한 것이다. 말로는 자식 같다 하면서도 끔찍한 비명을 정책으로 덮어버리고 얼마의 보상금으로 잊고 돌아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구제역으로 직접 죽은 소가 몇 마리인지 의문을 갖는다면 감염의 결과와 감염의 과정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상식이 이 나라에서는 오래전에 사망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치과계는 지난주부터 지부총회를 시작으로 협회장을 선출하는 치협 대의원총회까지 한 달여의 선거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차기 치과계를 이끌겠다는 후보들의 공약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 앞에 이렇게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그럼에도 난제들을 풀겠다고 자임하고 나선 후보들에게 회원의 입장에서 격려와 용기를 드리고 싶다.항상 이맘때가 되면 느끼는 것이지만, 현 집행부의 노고에 감사하면서도 아쉬움이 남고, 그래서 차기 집행부에 대한 기대감에 공약을 살펴보게 된다. 이번에도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해 보면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만큼 그들이 치과계를 위해 많은 고민과 경험을 해 온 분들이라 회원들의 생각을 하나라도 빠뜨릴까 노심초사한 흔적이 공약 곳곳에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회원들 입장에서 공약만 들여다보면, 그들의 차이점을 찾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회원의 생각과 문제점을 알고 있다고 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매듭을 풀 수 있는 지혜와 실천력을 가진 지도자를 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약 속에 숨어있는 실천 의지를 찾아내야만 할 것이고, 그러려면 단순히 표를
인생이 짧다지만 하염없이 길기도 하고 또 지나고 보면 일장춘몽 같아 참 어렵고도 허무하다 한다. 젊은 청춘은 불같은 정열이 앞을 가려 그 소중함을 모르지만 뒤늦은 후회로 다시 돌려놓을 수도 없다. 들의 풀과 같고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 같은 우리는 살며 예측하던 중의 한번은 반드시 영원으로 떠나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이별에 앞서 우리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경험하기도 하고 연습도 한다.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특히 치열한 이 도시의 현실에서는 언제나 작은 틈만 보여도 분리의 작업이 시작된다. 그것이 직업에서의 절망적인 퇴출이 되기도 하고 또는 식상해 버린 일상에 대한 스스로의 다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곳은 떠남이건 떠나보냄이건 간에 냉정하면서 또한 너그럽다. 그래서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는 말도 있고 정상에 있을 때 떠나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가장 어려운 선택 중의 하나는 사람이건 아니건 삶의 인연에서 끊어내고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큰 이별은 일생의 사건이므로 그나마 작은 일조차 만들지 못하면 평생 후회 아닌 후회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얼마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작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제목이 너무 당연하지만, 살다보면 가정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일이 많아 때로는 상기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얼마 전 어느 방송에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남학생의 폭력성과 반사회성이 여과없이 비춰졌는데, 알고 보니 가정불화가 원인이고 거기에 따른 부모의 태도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자녀는 부모의 거울이고 그 거울을 보며 부모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말과 행동과 태도를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탕으로 자기 반성과 수양을 하며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장 중요한 항목이 부모이고, 가족과의 유대, 나아가 친족과의 유대가 인격형성과 사회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찌보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도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가정이 평안하면 구성원들도 평안하고 각 학교나 직장에서도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다. 즐거움과 긍정을 받은 사람들이 다시 집으로 가서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줄 수 있으면 윤회(輪回)가 가능해진다. 가정을 튼실히 가꾸어 가는 길 중에
치협회장 선거가 2달 앞으로 다가왔다.3명의 협회장 후보가 부회장 후보와 진용을 갖춰서 출사표를 던졌다.각 후보의 선거공약은 아직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치과계의 대표적 현안들의 해법을 나름대로 내놓았다.지금 우리 치과계는 큰 위기에 놓여 있다. 내부로는 저수가로 대표되는 일부 네트워크 치과와 그리고 그 아류들과 일반 개원의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직원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져서, 직원들이 원장의 면접을 본 지가 오래되었다. 그로 인해서 월급은 기하급수적으로 뛰었다.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들을 치과에서 해야 하니, 전담직원을 하나 더 둬야 서류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또한, 오갈 곳 없는 새내기 치과의사들은 악덕 네트워크 치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불법과 편법의 상술을 배워서 뜻하지 않은 길로 쉽게 진출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치과의사가 국민 구강건강을 위해서 묵묵히 걸어왔던 그 길이 보편타당한 진리이고 그 길이 치과계와 국민건강을 위해서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이렇게 기존의 치과와 새내기 치과의사들을 연결하고 소통하는 시스템을 찾는 아이디어는 상당히 바람직한 정책이다. 그런
개개인들이 스스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폐쇄적 의미의 고전적 자유주의가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한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의 미명아래 여러 나라의 절대적 빈곤의 감소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이미 실패의 징후를 지구상 곳곳에서 다분히 드러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결과에 있어서도 심한 비판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이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때론 미국의 네오콘적 정치유형에 가까운 특정 분파의 한시적 자본주의로 정의되기도 한다. 특히 이런 상업주의 방식은 실제로 자본의 축적과 확대를 위해 세계 여러 국가를 공격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극대 이익을 추구하며 영향을 끼친 곳마다 국가 내에서 그리고 국가 간에도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던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의 자본 이데올로기는 도덕이 거세된 괴물같이 오직 부의 확충만을 목적으로 복지제도 마저도 먹어치우는 탐욕을 과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대표적 위험의 예로 스타벅스 카푸치노의 거품에 비교되기도 하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규모는 각 나라에 있는 이 커피매장의 숫자와 비례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음식점보다 흔한 다양한 커피전문점들의 숫자를
2월의 끝과 3월의 시작엔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시간들이 있다. 그 중에도 유난히 춥고 긴 겨울과 아름다웠던 크리스마스를 묵묵히 독서실에서 공부하며 쓸쓸하게 보내고, 1월 치과의사 국가고시를 치렀으며, 빛나는 졸업장과 함께 기뻐하시는 부모님께 학사모를 씌워드리고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은 새내기 치과의사들도 있고, 4년 동안의 전공의 생활을 마치고 국가의 부름에 혹은 개원가로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치과의사들도 있다. 모두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각자가 뜻한 바의 길에서 원하는 바를 성취하시길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동아리 후배나 의국 후배들이 졸업과 수료 인사를 올 때마다 하는 얘기가 있어, 잔소리꾼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면을 빌어 말씀드리고자 한다.첫째, 치과의사 생활도 마라톤과 같다.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길게 보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초반 페이스부터 무리한다면 완주가 힘들고, 게으름을 피운다면 남들보다 훨씬 뒤에 머무르게 된다. 혹시, 뒤에 머무르게 된다고 조바심 내지 말아라. 언젠가는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되리니, 눈앞의 성적에 욕심 내다보면 무리하게 된다. 자신의 몸 상태와 평소 기록에 맞게 달리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라톤 자체를 즐길 줄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누구는 돈이 많아서 좋은 진료를 해 주고 누구는 돈이 없어서 최소한의 진료만 해 준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사장님이 왔다고 약을 빨리 주는데 직원이 왔다고 확인과정을 꼼꼼히 거쳐서 약을 주었다.이런 일이 벌어지면 국민들의 여론이 어떻게 될까? 당장 그 의사는 부도덕한 의사이며, 환자를 차별하는 의사이며 그런 의사는 당장 법적처벌도 하고 의사면허도 박탈시켜야 한다고 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벌을 주어도 아무도 동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라 했으니 모든 환자에게는 상태가 동일하다면 누구나 똑같은 치료를 해 주어야 할 것이다.“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의 ‘나는 지금 부끄럽다’라는 에피소드에서는 아이가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배를 부딪혀서 응급실로 들어왔다. 비장파열로 내장에 출혈이 있었고 복부 시티도 없는데다가 혈압도 낮아 마취가 어려운 상황에서 수술을 실시, 회복이 되었다. 그런데 퇴원 전 열이 나기 시작해 패혈증이 의심되어서 혈액배양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아이를 살리기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을 특별한 기념일처럼 들뜨게 만드는 날이다. 그렇지 않아도 명절이며 여러 챙겨할 날들에 치이며 살기도 하지만 우리 주위에 어느덧 스멀스멀 생겨나는 수많은 데이(Day)들은 일상에 꼭 효과적이지는 않는다 해도 나름 반복적인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적잖은 상업적 경제효과를 가져오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현실과 밀접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과거 특정한 날들의 의미를 전혀 기억 못하게 된다거나 혹은 그 중요성이 이런 데이들로 인해 밀려나 버린다면 결국 우리 역사와 정체성을 속이는 날로 남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에게 절대적인 애국지사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 바로 1910년 2월 14일이며 돌아가신 날이 3월 26일 인데 우리들은 발렌타인데이며 화이트데이에 빠져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도록 만들어 준 선열의 피 값을 기억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것은 일본식 발렌타인데이의 과도한 상술이라는 지적도 빼놓을 수 없다. 대의(大義)는 소인을 경멸하던 우리 선조들이 추구해온 거침없는 정신문화 유산이다.서양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
얼마 전 공중파에서 방영된 故 이태석 신부의 ‘울지마 톤즈’는 종교인 여부를 떠나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영화관에서도 지난해 9월 9일 개봉 이후 관람 인원 40만을 넘기고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살면서 영화를 통해 가장 순수하게 울 수 있다면 아마도 이 다큐만한 내용도 드물 것이다. 고인이 된 그 분의 삶 이야기 중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하게 된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지만 대신 그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었다는 말을 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예수에게 행한 것이라는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 그리고 10남매를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등이 바로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그의 죽음이 가져온 톤즈의 충격은 엄청났지만 그 영화를 보는 우리의 한 편 마음 속에서도 이해 할 수 없는 신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는 무거운 침묵의 의문이 떠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는 말이 있다. 물론 세상에는 어떤 이유에서건 또는 맹목일지라도 신을 사랑한다는 사람들로 붐빈
최근에 각 동창회와 협회, 각 지부의 움직임이 분주해진걸 보면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전무후무하게 치과의사들의 호응을 얻었던 AGD는 일단 명칭 사용 금지라는 행정 조치를 받아 돈만 날렸다는 회원들의 불만에 어디로 흘러갈 지 모르고, 개원 질서를 문란케하는 치과들에 대한 협회 차원의 대응도 별 뾰족한 수가 없고, 예산도 없는 무상의료라는 희한한 이슈를 들고 나온 정치권을 향한 대응 방안도 별로 없는 이 시점에 협회의 수장을 뽑는 선거의 결과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과연 입후보 하려는 몇몇 후보자들이 이러한 이슈에 대한 공약이나 계획이 있는지 묻고 싶고 누가 협회장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 부탁하려 한다.먼 옛날 얘기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의료법에 의료인들의 자율징계권이 상징적으로나마 존재했었다. 개원시의 행정 절차 중에 협회를 경유해야만 하는 항목이다. 그나마 그런 이유로 개원가의 질서는 잘 유지되었고 협회의 존재감도 컸다. 그 당시에는 지금 같이 개원 질서를 문란케하는 치과들은 발붙이기가 힘들었다. 또한 회비 및 입회비의 징수율도 거의 100%에 이르렀고 선후배간의 관계도 좋았고, 각 반의 활동도 활발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행
최근 노래 가사 속 너는 대부분 ‘니’다. ‘니’는 어느덧 친숙해져 노랫말과 방송뿐 아니라 영화 자막에서도 자연스럽게 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니’는 너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도 되지만 중국어의 ‘니(?)’ 또한 너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네가’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오래전 어렵게 국어 시험을 통해 단련된 강박적인 단어임에도 이젠 아이들의 익숙한 표현인 ‘니가’와 뒤섞여 서로 구분되지 않은 지 오래다. 오히려 ‘네가’라는 어구를 쓰게 되면 왠지 스스로 구세대를 자청하는 것 같아 도리어 ‘니가’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굳이 ‘네가’로 써야 한다는 어법상 당위성은 이미 ‘니가’라는 발음의 편의성과 젊은 세대의 창의적 흐름에 묻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최근 개원 20주년을 맞아 국어 국립원장은 규범이 언어생활을 옥죄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고 한다. 이미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보편적인데 단지 표준어라는 관점으로 관습화된 언어를 제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차라리 둘 다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고 자유롭게 말하도록 경쟁을 시키면 언젠가는 정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내음’, ‘손주’, 그리고 ‘허접’ 같은 비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