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지닌 이가 1,000억원을 주면 내놓겠다는 기사가 보인다. 치과계에서는 블랙프라이데이에 교정 덤핑이 발생했다는 기사와 더불어 유디치과가 미국에서 검찰에 기소되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 세 가지의 사건을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도덕적 가치가 배제된 이윤추구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돈’이다. 오로지 돈을 위한 행동이다. 해례본은 우리민족의 자랑과 자부심의 존재하는 증거이기 때문에 1,000억원을 부른 것이다. 두 번째는 남보다 많은 환자를 유치하려는 전략으로 덤핑을 기획한 것이다. 세 번째는 체인점을 통한 이익 실현을 추구한 것뿐이었다. 돈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내면을 보면 전혀 다른 도덕성을 보인다. 세상의 물건에는 사물적 가치 외에 정신적 가치가 있다. 종교적으로 불교에서 부처님의 사리는 그 가치가 대단하지만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성의를 감히 돈으로 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렇듯이 훈민정음 해례본은 물건 가치가 아니라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같이 우리민족의 정신적 가치를 지닌 물건이다. 이미 돈의 가치를 넘어선 것이다. 그런 것을 개인적인 욕심에 금전
얼마 전 ‘사기와 생존전략’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을 목격했다. 강연 제목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 나이에 따라서 그 의미를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사기(詐欺)와 생존전략. 즉 생존하기 위하여 얼마나 사기를 잘치고 트릭을 잘 사용하는가에 대한 강의로 생각한 것이다. 30대는 사기(士氣)와 생존전략으로 이해하였다. 직원들이나 동료들의 士氣를 어떻게 진작시켜서 생존전략으로 사용하는 리더십 강의로 받아들였다. 반면 50~60대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생존전략으로 이해하였다. 같은 제목이지만 각자의 경험에 따라서 제목을 달리 이해한 것이다. 사실 필자의 강의는 사마천의 사기 강의였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보는 자, 듣는 자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판단한다. 사마천의 사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엄청난 분량의 책을 2000년 전의 사마천의 의도대로 이해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작가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후학들이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서 이해할 수 있는 정도와 어떤 특정한 시점이나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사기란 엄청난 량의 책을 한 번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요즘 TV의 지상파나 케이블이나 어느 곳을 보아도 일명 먹방(먹는 방송)이 대세이다.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직업에서 쉐프(조리사, 주방장)가 순위 안에 든다고도 한다. 미남 쉐프에서 아저씨 요리연구가, 심지어는 할머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을 하고 거기에 유명 예능인들까지 가세한 것을 보면 확실하게 대세는 대세이다. 얼마 전 일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 중에 ‘요즘 대세인 먹방 이후에 다음은 테마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의외의 질문을 받았다. 한 시대의 흐름을 알고자하는 것은 모든 전문가들이 추구하는 바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 한다. 또 지금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그 후에 그 두 개를 종합한 것에 미래변수를 대입하여야 예측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먼저 경험한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정확하게 20년 전인 1995년 필자가 유학할 당시의 일본 방송을 이야기 했다. 그 당시 일본TV의 반은 토크쇼였고 반은 먹방이었다. 뉴스의 화제 거리는 원조교제였다. 처음 경험하면서 이상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 후에 방송에서 비키니만 입은 여자들이 등장하였다. 예능
얼마 전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한 프로그램에서 법학영재를 발굴했다는 내용이었다. 열 살짜리 아이가 법전을 읽고 법해석을 하는 내용이었다. 예전에 보았을 땐 미술영재 부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법학영재는 충격적이었다. 작가나 연출가들의 생각에 의문이 간다. 그들의 생각 속에 학문의 각 분야가 마치 대학에서 학과를 나열하듯이 모두 똑같이 나열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음악이나 미술은 예술에 속하며 그것은 예능이 필요하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능력을 조기에 발견하고 키워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법은 예술과 다르다. 법은 한 사회가 구성되기까지의 역사와 세월이 녹아들어 있다. 그렇게 녹아들어서 만들어진 것이 법이다. 그 세월과 역사를 이해해야 정확한 법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법전의 글씨를 법이라고 생각한다면 심한 오류를 유발한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그 영재라는 아이가 그리 생각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해부학을 외운다고 의사영재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유사 프로그램이 만들어질까 두렵다.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방송되는 사회가 두렵다. 철학과 영혼이 없는 프로그램이다. 아이에게는 아이에 맞는 발달과정이 있다. 잘못된 인식이나
레바논과의 러시아월드컵 축구예선전을 보았다. 3:0이라는 큰 차이로 승리하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승리하였던 라오스와의 경기에서 8:0으로 승리하였던 까닭에 대승하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예전과 비교하는 비교심리 때문이다. 그런데 라오스에게 대승을 했던 당일과 다음날 신문, 인터넷, SNS에도 8:0이라는 대승의 업적에 대한 글이 보이지 않았다. 검색어 순위에도 없었고 일부러 검색하여 찾아야만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비교심리가 아니라 당연심리에서 비롯되었다. 모두가 라오스에게는 당연히 이길 것이라는 심리가 작용하였고 따라서 승리가 이벤트화 되지 않은 원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라오스에게 패배했다면 엄청난 기사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이벤트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 같이 당연심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발견되는 심리적 현상이다. 예를 들어 항상 100점을 맡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하나를 틀려서 97점 받으면 그냥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지나친다. 부모님에게 받는 사랑이나 가족 간에 받아온 사랑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다보니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면 평범하고 당연한 일 뒤에는 항상 누군가의 수고가 포함되어
어제 저녁 9시 뉴스에 경기도 치과의사의 의료법 위반에 대한 사건이 보도 되었다. 내용은 의료법 위반으로 의사면허가 일시 정지된 치과의사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났다는 것이다. 개원을 하고 블로그에 “7세 이하 진료 시 어린이 칫솔세트 증정, 5만원 이상 진료 시 홈플러스 상품권 증정, 인터넷 소개글 등록 시 경품 증정”이란 내용의 광고를 올렸고, 이것이 의료법 27조3항(금품을 통한 환자 유인행위 등을 금지)을 위반한 사항이었고 한다. 치과원장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기소유예가 되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광고로 환자를 유인했다며 1개월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것에 원장은 “상품권이 실제 제공되지 않았고 광고 글도 며칠 만에 자진 삭제해 환자 유인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고 또 병원 직원이 독단적으로 광고를 올린 것이며 자격정지는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주장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이 내용을 보면 치과계의 과거와 현재가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과 그 해결방법도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만약 20년 전인 1995년 즈음에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면 어떻게 일이
메르스가 끝나니 북한문제가 다시 발생하였다. 그 덕에 치과계는 그나마 있던 방학특수가 꽃은 고사하고 싹도 틔우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고전적인 치과계의 보릿고개인 추석이 한 달 남짓 남았다. 예전부터 추석 전은 치과 보릿고개이다. 농촌은 추수로 바빠서 환자가 없고, 수확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수중에 돈도 다 떨어질 때이고, 또 추석 때 목돈이 들어가니 소비를 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홍시가 익을 무렵 치과의사의 얼굴도 익는다는 말이 나왔다. 며칠 전 한 후배로부터 환자가 없어서 무슨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넋두리를 들었다. 고민하는 후배에게 몇 가지 고려할 사항을 일러주었다. 마케팅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고객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마케팅과 비즈니스 혹은 물건을 판매하는 대부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것이 구매자의 마음이다. 그래서 임상적으로 구매심리학, 소비심리학, 마케팅심리학 등이 등장을 하였고 고객의 마음을 파악하려고 노력들을 한다. 대부분의 내용이 구매자 즉 상대자의 마음을 파악하고 판매를 성공시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마케팅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있다. 판매자의 의도이다. 판매자가 일회성으로
지리산 천왕봉 밑에 자리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인 법계사에서 이틀간 템플스테이를 하고, 다시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이는 고성 문수암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천년 세월을 묵묵히 지내신 법계사 부처님 사리탑과 천년 동안 중생들의 모습을 지켜보신 문수암 부처님에게 현대를 사는 지금의 중생은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본다. 수명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고 삶은 윤택하여지고,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족과 대화하고, 달나라를 넘어 화성에 착륙선을 보내는 지금의 중생을 어찌 볼 것인가? 이런 문명과 문화의 발달된 모습은 부처님의 해탈 전에 나타난 무수한 유혹의 한 가지일 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돌아온 서울은 변함이 없다. 치과 원장실에는 그동안 읽지 못한 치과계 신문들이 쌓여서 탑을 이루고 있다. 신문 속의 치과계는 작년이나 10년 전이나 별반차이가 없다. 임플란트 덤핑이야기, 1+1광고 이야기, 스케일링 무료 시행 대법원 판결 불법 결정, 교정치료 275만원, 전문의제도 답보상태, 환자들의 생떼 백태, 생각지 못한 의료사고 등등 테마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방법과 가격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12회 분할 납부라는 방식으로 세분화된 것
지난 12일은 말복이었다. 3복 날의 마지막 복날이다. 복날은 한여름에 경(庚)자가 들어오는 날을 복날이라 하였다. 따라서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3번이 있다. 어찌 한창 더운 여름날에 유독 복날만 더울 것인가. 이는 아마도 지치기 쉬운 날씨에 10일에 한 번은 꼭 잘 먹으라는 선조들의 지혜가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입추가 지나니 한낮 더위의 기승은 여전하지만 열대야 현상이 사라지고 새벽 공기에 찬 기운이 돈다. 다시 한 번 자연의 순환법칙을 이해한다. 치과에까지 타격을 입혔던 메르스도 그렇게 지나갔다. 시작된 것은 끝이 있고 그 끝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음이 사계절의 의미이고 자연계의 순환법칙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외형적인 몸이 그렇고 마음 또한 같다. 필자 또한 그런 변화를 느낀다. 50세가 넘으니 근육량이 줄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긴다. 오래 사용한 기계들을 기름칠하고 살살 사용하라는 신호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지하철을 타고 컴퓨터 앞의 의자를 치웠다. 최대한 앉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세상의 이치가 진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늦출 수 있는 것도 이치이다. 물이 경사가 심하면 빨리 흐르고 경사가 완만하면 천천히 흐르는 것과 같다
고등학교 친구가 유지장치를 하고 있는 딸과 함께 내원하였다. 미국 유명 금융회사의 아시아 총괄팀장으로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는 친구다. 틈나는 시간에 잠깐 이야기를 하며 그 친구의 시야를 통하여 익숙한 사실들을 새롭게 발견하였다. 오랜만에 귀국한 친구는 한국 방송의 대부분이 먹는 요리방송이고 수다떠는 방송인 것에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나 청년들이 그것을 보면서 정의와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는 부분이 없어 모든 것이 인스턴트식으로 흐르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20년 전 일본 유학시절의 방송이 떠올랐다. 당시 대부분의 방송이 먹는 방송이었고 몇 명 유명한 입심 좋은 사람이 모든 방송을 지배하며 수다떠는 것이 생소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 방송이 지금 생각하지 않는 일본청년을 만들었다. 과거 30년 전 미일군사협정을 반대하며 30만명이 모여 적군파라는 모습으로 강열한 의지를 보였던 청년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평화헌법을 전쟁헌법으로 바꾸려는 의도에도 청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반대하는 집단들은 역시 30년 전에 데모하였던 그들이다. 전체를 생각하지 않으며 꿈을 꾸지 않는 현재의 일본 청년이 탄생하기까지 매체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
‘평온’이란 조용하고 평안함을 말한다. 마음에 번잡함이 없어지고 차분해지고 평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엄마 품에 안기어서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는 아이를 연상하게 한다. 번잡하고 복잡하고 혼탁한 현대사회에서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느끼기 참 어려운 감정이 되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평온하였던 기억의 끝을 찾아가보지만, 초등학생 시절 한창 더운 여름에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자다가 시끄러운 매미소리에 깨어났을 때의 그런 평온함은 성인이 된 이후의 기억에서 찾을 수 없다. 아마도 삶의 무게 속에서 잊고 살아온 듯하다. 메르스로 인하여 강연과 강의도 멈추고 진료실 환자도 줄어드니 번잡한 삶 속에서 쉼 없이 돌아가던 시계바늘이 느려지고 멈추어 섰다. 덕분에 오늘 아침의 고요함은 커피 향을 즐기게 해주고 창 너머에서 매미소리가 들리게 해준다. 어찌 매미가 오늘만 울었겠나마는 오늘만 유독 들리는 이유는 그동안 마음이 번잡하였던지 아니면 깨어 있더라도 뉴스나 드라마, 영화 등의 자극적인 내용에 심취하여 듣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음식을 먹을 때 자극적인 맛에 심취하여 점점 더 매운 맛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인 듯하다. 몸이 평안하니 마음도 평안한 모양이다. 일요일 저녁에 먹은
요즘 세간에 베스트셀러 1위가 ‘미움받을 용기’이다. 제목이 던지는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의미는 책에 더욱 흥미를 지니게 한다. 강열한 제목에 인터넷 주문을 미루고 빨리 보고 싶은 마음으로 책방으로 구입하러 갔다. 책은 심리학의 거장이라는 프로이드나 융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3대 거장 반열에 있다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의 사상을 청년의 질문에 답하는 철학자의 대화체로 이어나간다. 여기서 아들러는 목표를 행복에 두었다. 그것도 바로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고 그 방법론으로 미움받을 용기를 내라고 주문한다. 미움을 받을 용기는 나쁜 짓을 해서 미움을 받으라는 세속적인 의미가 아니고 반대로 타인의 눈을 의식하여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주문한다. 과거의 행적에 얽매여서 허우적대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며 막연한 미래의 행복을 꿈꾸는 이들에게 과감하게 과거를 끊는 용기를 내고 지금 행복하게 살 것을 이야기한다. 그는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간관계는 경쟁관계 구도와 수직관계 구도이다. 여기에서 타인을 인식하지 않음으로써 경쟁구도에서 탈피하고
모 치과계 신문을 읽다가 어떤 치과의사 포털사이트에서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회원 간에도 인신공격성 댓글이 난무한다는 우려의 글을 보았다. 더불어 그 글은 치과의사들이 기본적인 인성을 지니기를 당부하였다. ‘인성’이란 사람 人에 성품 性을 합하여 완성된 단어다. 즉 사람의 성품을 말한다. 性이란 마음 心에 날 生의 합성어다. 즉 마음이 시작되는 곳이란 의미다. 옛날 유교 교과서인 중용에서는 제일 처음을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 성(性)이고, 성에 따르는 것이 도(道)이며, 도를 수행하는 것이 교(敎)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이는 인성이 만들어진 이치이고 따라서 사람이 행하는 도리는 역순으로 교의 지침에 따라서 수행을 하여 도를 행하고 그러면 성을 알고 성을 알면 하늘의 뜻을 알아 하늘에 이른다는 의미다. 인간의 마음은 옛날부터 궁금증의 대상이었으며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였다. 따라서 동서고금을 통하여 성선설, 성악설 등 많은 주장들이 있었다. 그 중 공자는 인간의 마음을 성과 정으로 나누었다. 즉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性)과 성의 움직임에 따라서 발현되는 정(情)으로 나눈 것이다. 정은 간단히 이야기하면 감정이다. 그래서 7정이라 하여 희로애락애오욕(喜怒
메르스 사태가 진정국면으로 들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아쉬움을 많이 남기기는 하였으나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메르스가 끝나가면서 필자의 관심은 다시 그리스로 갔다. 그리스의 디폴트가 환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학중인 자식이 있거나 주식하는 사람들이라면 같을 것이다. 메르스는 아주 작은 바이러스이고 그리스는 국가라는 조직인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이런 전혀 다른 두 개의 공통점은 필자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메르스는 필자 생활의 패턴을 바꿨고, 그리스는 필자의 송금비용에 영향을 미쳤다. 메르스는 나타난 지 불과 3년인 반면 그리스는 수 천 년이다. 메르스는 생존에 대한 강인한 의지로 숙주를 떠나 신천지인 인간에게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둔 반면에 철학과 문화의 시작인 그리스는 찬란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지금은 세계적인 민폐국가로 전락한 것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바이러스와 인간의 차이란 생각이 든다. 메르스는 생존에 대한 끊임 없는 본능만이 존재하는 가장 원시적이고 집약적인 생명체라면 인간은 그것에 생각하는 사유가 있다. 즉 선악과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이다. 인간은 신에게 받은 자유의지로 선도 악도 선택할 수 있다. 그리스
산려소요’는 천자문에 나오는 글귀이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산려(散慮 :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면)를 해야 ‘소요(逍遙 : 노닐며 걷는다)’할 수 있다는 의미로 천자문에 넣어진 것이지만 정작 그 의미를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동두천에 가면 산 이름에도 소요산이 있다. 사색하면서 걷다보면 신선이 된다는 의미이다.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소요학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또한 천천히 산책하면서 토론하였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같이 사용된 ‘소요(逍遙)’를 처음 말한 이는 중국철학의 양대산맥인 유가와 도가 중에 도가철학자인 장자(莊子)이다. 고전 장자의 처음 시작편이 소요유(逍遙遊)편이다. 소요를 하면 진정한 유(遊)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장자가 말하는 유(遊)는 완벽한 자유이다.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유유자적한 자유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을 의미하는 그런 절대적인 경지를 한마디로 정의한 것이 유(遊)이다. 그런 유를 위해서는 소요를 해야 한다. 정신인 자유를 누리는 작업이며, 이를 위해서 천자문에서는 산려(散慮)하여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는 것부터 하라고 조언한다. 결국 소요유는 복잡다단하고 구속하고 속박하는 세속적인 가치에서 떠나 끝없이 광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