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사말은 “안녕하세요”다. 한자 安(편할 안)과 寧(편안할 녕)에서 유래한 단어다. ‘무탈하게 편안하시냐?’는 의미를 지닌다. 최근 유행한 트로트 가사처럼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를 먹었던 보릿고개나 울던 아이도 울음을 멈춘다는 호환마마, 그리고 3일에 한 번씩 겪었다는 외적의 침입 등으로 어렵게 살았던 조상들의 애환이 섞인 단어다. 아침에 부모님을 뵈면 처음 하는 인사말이 “안녕히 잘 주무셨습니까?”다. 이 또한 땔감이 떨어져 춥게 잤거나, 먹을 것이 부족해 하루 두 끼를 먹던 시절에 저녁밥을 빨리 먹고 일찍 잠을 자면 자다가 배고파서 깨고는 다시 잠이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온 인사말이다. 이렇게 우리 삶 속에서 잘 자는 것은 잘 사는 것의 인디케이터였다. 그런데 최근 잠 못자는 사람들이 다양한 연령층에서 증가하고 있다. 며칠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0~9세 소아불면증 환자가 작년에 58.1%, 올해 7.4%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60세 미만 불면증 환자 중에서 증가폭이 가장 큰 나이가 0~9세로 평균 3.9%보다 두 배 증가했으며, 다음으로 10~19세가 7.2% 증가했다. 통상 노년에서 불면증이 증가하는 것에 상반된 이례적인 양상이
지금도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 중에 중학교 시절에 배운 노래 하나가 있다. 미국 민요를 번안한 ‘메기의 추억’이다. 한국에서 가사를 번역할 때는 2절에서 메기가 백발이 된 것으로 하였지만 실제와는 다르다. 메기의 추억은 조지 존슨이라는 캐나다 시인의 ‘메이플 립스’ 시집에 실린 시를 가사로, 그의 친구가 곡을 만들어 주어 탄생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미국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 고등학교에 마가렛(애칭:메기) 클라크라는 꿈 많은 예쁜 여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해온 캐나다 출신 조지 존슨이라는 총각 선생에게 첫눈에 반한다. 메기는 조지와 사랑에 빠지고 졸업을 하고 둘은 결혼을 하지만 메기가 폐결핵으로 투병 생활을 한다. 그때 같이 금잔디 동산이나 물레방아가 도는 언덕 등을 오르며 나누던 이야기를 틈틈이 시로 쓰고 나중에 시집이 되었다. 투병하던 메기는 아들을 출산하고 다음 해 24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사망한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기차로 메기 고향으로 운구하던 중에 어린 아들이 칭얼거리며 계속 엄마를 찾으며 울자, 그는 열차 객실에 있는 승객들에게 “이 기차 뒤에는 나의 아내이며 아이의 엄마가 관 속에 누워 고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할 때 사람이 서 있으면 반드시 정지해야 하는 것으로 교통법규가 바뀌었다. 한번 쉬었다 출발하면 안보이던 것도 보이고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물론 급한 사람이라면 더 여유가 없어질 수도 있지만, 통상은 움직임이 느려지면 마음의 폭은 열린다. 운전하다가 얄밉게 끼어드는 얌체족들이 보이면 정말 끼워주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때 브레이크 한번 밟고 넣어주면 얌체족이 혜택을 보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들 때문에 흐름이 막혀서 피해를 보던 뒤차들은 혜택을 받는다. 요즘 필자는 누군가 끼어들기를 원하면 넣어준다. 뒤차들의 흐름도 빨라질 것이고 끼어드는 사람이 얌체족일 수도 있지만 빨리 가야 할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인파 속에서 누군가 빠르게 움직이면 한걸음 속도를 늦추어 자리를 비켜준다. 그러면 바쁜 사람은 빨리 가고 필자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가끔 드라이브를 위해 2차선 국도를 달리다 보면 뒤차가 맹렬히 달려와 차 뒤에 바짝 붙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필자는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세우고 뒤차를 먼저 보내고 커피 한 잔이나 물 한 모금 마시고 쉬었다 간다. 혜민 스
지인으로부터 받은 문자 중에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라는 글을 보았을 때 지금 치과의사들이 처한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SNS에서 초저가 임플란트 광고가 부쩍 증가했다. 말로만 듣다가 처음 광고를 보았을 땐 참담함을 넘어 허탈한 느낌을 받았다. 필자가 교정의라서 평생 임플란트를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이유가 없어 관계없는 사건일 수도 있지만,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의 가치는 그것을 취급하는 직업의 가치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00원짜리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과 10만원짜리 케이크를 파는 백화점 점포에서 주는 이미지가 다르다. 도로 위 자동차가 최근 들어 절반 정도가 외제차인 시대에 300만원 임플란트를 취급하던 시절의 치과의사와 30만원대 치과의사가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는 다르다. 외제차를 선호하는 심리를 지닌 고객 눈에 분명히 달리 보인다. 모든 환자가 싼 가격 치과의사를 찾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최저가가 등장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환자가 치과의사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사람
이번 국감 자료에 의하면 2021년 서울시에서 2,034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됐다. 60대 이상(32.2%), 50대(17.4%), 20대(17.4%), 40대(16.7%), 30대(16.5%)였다. 그중 20대(9.3%)와 60대 이상(8.4%)에서 전년도에 비해 증가했고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감소했다. 10년간 서울 자살자가 2만1,577명이라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연간 24만명 정도 신규 암 환자가 발생하고, 현재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암 유병자 수는 약 215만여명이다. 이들은 매일 살기 위해 노력한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 누군가는 살기 위해 노력하고 누군가는 죽으려는 시도를 한다. 물론 이들 각자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은 모두가 다르다. 암투병하는 사람들에게 살려는 이유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당연함을 거역하는 이들의 이유는 알아야 한다. 같은 이유로 행하는 같은 행동을 막기 위해서다. WHO 보고에 의하면 여성보다 남성이 높고, 우리나라도 2.5배 높다. 미국에서는 70%가 백인 남성이었다. 2018년 선데이저널에 의하면 60~80%가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이 원인이었다. 이혼녀보다는 이혼남이 2
볼일이 있어 테헤란로의 커피숍에서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추리닝을 입은 젊은 여성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최근 들어 집에서 입던 추리닝조차 거리 패션이 되었다. 20대 젊은 여성들이 추리닝으로 병원에 내원하고 지하철에서도 자주 보인다. 1년 전 즈음, 화장한 얼굴에 추리닝 차림으로 유니트체어에 앉아있는 언밸런스한 환자를 처음 대하고 조금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은 필자를 돌아보며 스스로 구시대 사람이 되었음을 인정한 날이기도 했다. 테헤란로에서 본 추리닝 패션은 또 다른 감회를 주었다. 테헤란로는 1970년대 말경에 서울시가 테헤란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기념으로 명명했다. 그런 테헤란시에서 지금 히잡시위가 한창이다.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이 다치거나 사망하고 구속되는 일이 진행 중이다.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감금된 뒤에 사망한 여성이 구타를 당하였다는 의심을 받으며 촉발된 시위다. 축구경기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여성차별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히잡시위로 전개되고 있다. 여성차별에 저항하는 테헤란 여성 이미지와 추리닝 패션으로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한국여성 모습이 너무도 극단적인 대조를 보였다. 2022년이라는 현
며칠 전, 서울 모 아파트에서 20대와 30대 남녀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변함없을 미래에 희망이 없어서 떠난다는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소식을 접하며 이 땅의 젊은이들이 미래 희망을 잃고 사라져간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과연 그들이 잃어버린 미래의 희망이란 무엇이었을까?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태어난 사람들은 시대에 따라 미래 희망이 달랐다. 조선시대에는 배만 고프지 않으면 되었고, 일제 강점기 때에는 자주독립이 희망이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전쟁이 끝나는 것이었으며, 군사정권시절에는 자유민주 정부가 희망이었다. 현시대에서 그들이 포기한 미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필자가 결혼하던 80년대에는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 반지하든 단칸방이든 같이만 있을 수 있으면 좋았다. 얼마 전 TV에서 30대 출연자가 최소한 아파트가 아니면 결혼해서 고생할 의미가 없다고 했다. 필자 세대가 어릴 때는 TV가 마을에 한두 집이나 있을 정도였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던 세대다 보니 없는 것에 익숙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2030세대는 없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경제적으로 모두 어렵게 살았던
아침 출근길에 갑자기 지하철이 멈추었다. 2호선 강변역에서 출입문이 열린 채로 마냥 움직이지 않았다. 안내방송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로 합정역부터 모든 역에서 열차가 멈추었고 언제 출발 가능할지 모른다고 알렸다. 그동안 뉴스로만 듣던 일이 필자 출근길까지 막았다. 일단 밖으로 나왔지만 필자와 같은 처지의 인파로 택시를 잡는 것도 어려웠다. 지하철로 두 정거장이지만 마을버스로 30분이 걸리니 진료시간을 맞추기에는 이미 늦었다. 병원에 전화해 30여분 이상 늦을 수 있으니 예약 환자에게 양해를 구해 달라고는 우여곡절 끝에 35분 만에 도착했다. 40분 이상을 기다렸던 환자에게 변명과 사과를 시작으로 정신없이 오전이 지났다. 살다 보면 지하철 멈춤처럼 생각하지 못한 사건이 불현듯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에게는 질병으로 오고 어떤 이는 사고로 오기도 한다. 60세가 넘으니 뇌졸중으로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있고, 암 투병 중인 지인들도 있다. 모 외제차 화재사건이 한창이던 시기에 갑작스런 부고에 조문을 가보니 차량 화재 피해자이신 지인도 있었다. 정신없이 오전을 정리하고 커피 한잔을 마주하니 다양한 생각에 잠겼다. 오늘 필자는 조금 바쁘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전문지식을 지닌 치과의사보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를 만난다. 예를 들어 소아교정에서 상악 제1대구치를 후방으로 밀어야 하는 경우에 제2대구치의 맹출 여부는 중요하다. 맹출 전이 좋지만 엄마가 스스로 생각하여 모든 치아가 맹출되기를 기다렸다가 아이를 치과에 데리고 오는 경우가 있다. 상태가 심하지 않으면 다행으로 심한 경우 발치교정를 해야 하기도 한다. 비발치 치료라는 선택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수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가슴으로 수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엄마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설명하면 짜증 내거나 심지어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 유형의 사람을 필자는 ‘자신이 항상 옳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항상 옳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으로 타인의 충고나 지적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의외로 주변에서 한 두 명 정도는 발견된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 사이에서 아주 사소한 충고나 조언조차 수용하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 감정적으로 심하게 폭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격장애를 의심해 봐야 한
레몬은 인도 히말라야가 원산지였다. 인도에서 유럽으로 처음 레몬이 들어 왔을 때 모두가 속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긴 것은 오렌지와 비슷한데 맛은 강한 신맛으로 먹기 거북해 못 먹을 과일로 인식되었다. 그 후로 서양에서 레몬은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내용이 없는 불량품을 상징하는 은어가 되었다. 경제학자 애컬로프는 이런 레몬을 ‘레몬 마켓’ 이론에 사용했다. 그는 중고차 시장에서 종종 발생하는 경우를 예로 제시했다. 중고차 시장에 처음에는 다양한 품질의 차량이 존재한다. 그런데 구매자와 판매자는 중고차 품질에 대해 아는 정보가 다르다. 구매자는 잘 모르는 반면 판매자는 잘 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판매자는 품질을 잘 알기 때문에 제값을 받으려고 하는 반면, 구매자는 품질을 잘 모르기 때문에 모든 차량이 비슷하다는 생각에 평균가격으로 차량을 구매하려 한다. 이러다 보면 좋은 것은 안 팔리고, 품질이 낮은 것만 판매가 잘된다. 이렇듯 안 좋은 물건일수록 더 많이 구매되는 상황을 경제학에서 역선택이라 한다. 이런 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중고차는 점점 더 품질이 나빠지고, 점차 구매자로부터 외면당하다가 결국엔 시장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는 논어에 나온다. 세 명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여러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자기를 낮추면 모두가 스승이라는 의미도 있다. 또 달리 생각하면 중국 철학에서 3이란 숫자는 완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솥이나 그릇이 안정되게 세우려면 다리 3개가 가장 안정적이다. 또 천지인 삼재(天地人三才)는 만물을 의미한다. 이런 면에서 3명이란 다수를 포함한다. 즉, 다수가 가는 길을 따르면 큰 실수가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수가 옳으니 따르는 것이 좋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가 옳을 확률이 높을 수 있지만, 역사나 현실을 돌아보면 틀린 경우도 많았다. 다수가 틀리는 가장 큰 이유는 책임회피와 군중심리다. 다수 속에 개인이 숨으면서 부도덕한 행동을 해도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며 회피하기 쉽다. 대표적인 예가 전쟁에서 잔혹 행위를 하는 전범들이다. 두 번째는 군중심리다. 다수에 휩쓸리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지며 단체행동이 옳다고 믿게 된다. 이것이 더욱 심해지면 집단 광기로 흐른다. 최근 금리 인상으
아침에 출근하니 실장님이 종이 하나를 건넸다. 의료폐기물방식이 변했다는 설명서를 받고 여러 번 당황했다. 우선 ‘비콘태그’라는 용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아는 것이 당연한 듯 기록된 내용에 당황했다. 두 번째는 10월까지 모든 치과병·의원에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에 당황했다. 세 번째로 한 번 읽어서는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움에 당황했다. 또 지금 시대가 무슨 군사정권도 아니고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데 정부가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하는,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정책을 강요하는 것에 당황했다. 적어도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려면 기존의 방식을 수용해야 하는 기본적인 철칙도 무시했다. 기존 사용자보다 새로운 방식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구조로 정책 참여도를 높이는 방법도 없었다. 오로지 정부 편의를 위해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요하는 것은 절차상 분명히 잘못됐다. 방식이 변하는 것에 대한 비용부담을 모두 의료기관에 일방적으로 전가한 것도 비민주적인 형태다. 정책 입안자들 눈에는 의료인을 아직도 도둑놈 정도로 인식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모두 부담하라는 태도로 의심된다.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정부 지원금을 주면 예산 확보나 타당성
엄청난 폭우로 사당동에 사는 누님이 걱정돼 안부 전화를 드렸다. 고지대 아파트라서 침수피해는 없었지만 60평생 처음 보는 폭우라는 말을 듣고 건강에 유의하라는 덕담을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서울에 폭우가 내리는 동안 지방은 폭염에 시달렸다고 한다. 기후마저 극단의 시대인 듯하다. 1700년대 학자들은 과학과 학문은 점차 진보해 인류의 장래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릴 것이며, 사회는 문명의 진보와 함께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루소는 다수의 생각과 달리 문명이 진보할수록 사회의 불평등은 증대될 것이라 주장했다. 300년이 지난 지금 사회는 그의 예상대로 되었다. 하지만 고도의 식견을 지녔던 루소조차도 기후마저 극단의 시대가 될 것은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은 ‘3C의 시대’이고 극단적인 기후 또한 그 때문이라고 한다. 기후(climate), 계급(class), 자본주의(capitalism)다. 극단적인 기후가 나타난 배경은 온난화이고 그 원인은 탄소배출량이 증가한 탓이다. 탄소 배출 증가는 자본주의로 인한 경쟁적 산업화가 만들어냈으며, 그 주역은 지구 북반구의 부유층과 상위 중산층이었다.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탈탄소를 하지 못하면 기후 재앙은 상상을 넘어설 수
진료를 하다 보면 다양한 환자를 만난다. 그중에 필자와 취향이 다른 환자를 만나 작은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가장 흔한 경우가 향수다. 필자가 향에 조금 예민하다 보니 진한 향수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면 강한 냄새로 머리가 어지러워 마스크를 이중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정작 당사자는 본인 취향이 필자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아예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다음은 무서운 환자다.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화장이 무섭다. 필자가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지 스모키 메이크업이 심한 다크 스모키 화장을 보면 섬뜩함을 느낀다.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스모키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도 중독성이 있는지 매번 진하게 하는 환자는 언제나 그런 모습으로 내원했다. 컬러렌즈나 서클렌즈를 사용해 눈동자가 커 보이고 눈 색깔이 달라 보이는 경우도 예쁘기보다 무섭게 보인다. 회색 눈동자 환자와 인사를 건네고는 가급적 눈을 안 마주치려 노력하는 필자 모습을 발견한다. 가끔은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일부러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본다. 팔다리의 심한 문신도 섬뜩함을 느낀다. 최근 문신이 유행하다 보니 한두 개는 많이 보지만 전신 문신도
얼마 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우승을 했다. 4년 전에도 한국인인 선우예권이 우승해 연속으로 받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을 깨고 최연소 우승이라는 기록마저 남겼다. 필자도 간간이 심심하면 베르디 음악을 듣기는 하지만 어려운 음악을 이해할 만큼 클래식 마니아는 아니다. 뉴스를 들으며 호기심이 생겨 유튜브에서 그의 연주 모습을 보며 ‘신명나다’란 단어가 떠올랐다. 순수 국어인 ‘신명나다’는 ‘저절로 일어나는 흥겨운 신과 멋이 생기다’로 ‘신나다’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신남이라 할 수 있다. 혹자는 개인이면 ‘신난다’라 하고 여러 명이면 ‘신명난다’라고 하지만 사전적으로는 구분돼 보이지 않는다. 여러 명이 같이 놀다 보니 개인의 ‘신남’이 배가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많지만 임윤찬처럼 혼자서도 충분히 신명나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신들린 듯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신명난 모습과는 다소 다르다. 신들린 모습은 무속인이 신(神)이 들어와 접신한 상태에서 작두에 오를 때처럼 평소와 다른 모습 상태라 할 수 있다. 한자어에 ‘신명(神明)’이 있지만 ‘신명나다’와는 의미가 다르고 천지신명(天地神明)의 의미에 가깝다. 신명이 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