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을 특별한 기념일처럼 들뜨게 만드는 날이다. 그렇지 않아도 명절이며 여러 챙겨할 날들에 치이며 살기도 하지만 우리 주위에 어느덧 스멀스멀 생겨나는 수많은 데이(Day)들은 일상에 꼭 효과적이지는 않는다 해도 나름 반복적인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적잖은 상업적 경제효과를 가져오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현실과 밀접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과거 특정한 날들의 의미를 전혀 기억 못하게 된다거나 혹은 그 중요성이 이런 데이들로 인해 밀려나 버린다면 결국 우리 역사와 정체성을 속이는 날로 남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에게 절대적인 애국지사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 바로 1910년 2월 14일이며 돌아가신 날이 3월 26일 인데 우리들은 발렌타인데이며 화이트데이에 빠져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도록 만들어 준 선열의 피 값을 기억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것은 일본식 발렌타인데이의 과도한 상술이라는 지적도 빼놓을 수 없다. 대의(大義)는 소인을 경멸하던 우리 선조들이 추구해온 거침없는 정신문화 유산이다.서양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
얼마 전 공중파에서 방영된 故 이태석 신부의 ‘울지마 톤즈’는 종교인 여부를 떠나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영화관에서도 지난해 9월 9일 개봉 이후 관람 인원 40만을 넘기고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살면서 영화를 통해 가장 순수하게 울 수 있다면 아마도 이 다큐만한 내용도 드물 것이다. 고인이 된 그 분의 삶 이야기 중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하게 된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지만 대신 그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었다는 말을 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예수에게 행한 것이라는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 그리고 10남매를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등이 바로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그의 죽음이 가져온 톤즈의 충격은 엄청났지만 그 영화를 보는 우리의 한 편 마음 속에서도 이해 할 수 없는 신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는 무거운 침묵의 의문이 떠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는 말이 있다. 물론 세상에는 어떤 이유에서건 또는 맹목일지라도 신을 사랑한다는 사람들로 붐빈
최근 노래 가사 속 너는 대부분 ‘니’다. ‘니’는 어느덧 친숙해져 노랫말과 방송뿐 아니라 영화 자막에서도 자연스럽게 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니’는 너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도 되지만 중국어의 ‘니(?)’ 또한 너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네가’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오래전 어렵게 국어 시험을 통해 단련된 강박적인 단어임에도 이젠 아이들의 익숙한 표현인 ‘니가’와 뒤섞여 서로 구분되지 않은 지 오래다. 오히려 ‘네가’라는 어구를 쓰게 되면 왠지 스스로 구세대를 자청하는 것 같아 도리어 ‘니가’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굳이 ‘네가’로 써야 한다는 어법상 당위성은 이미 ‘니가’라는 발음의 편의성과 젊은 세대의 창의적 흐름에 묻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최근 개원 20주년을 맞아 국어 국립원장은 규범이 언어생활을 옥죄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고 한다. 이미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보편적인데 단지 표준어라는 관점으로 관습화된 언어를 제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차라리 둘 다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고 자유롭게 말하도록 경쟁을 시키면 언젠가는 정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내음’, ‘손주’, 그리고 ‘허접’ 같은 비표준
유(有)와 무(無)는 인류 역사 이래 사람들의 가장 큰 화두가 되었지만 결국 우리의 현실에서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양분적 틀을 대표하고 있다. 먹고 사는 일이 훨씬 험했던 과거의 생존부터 오늘날 사회 복지의 개념이 정립된 나라에서의 생존에 이르기까지 양극화된 소유는 결국 생존의 문제와 연결된다. 뼛속 깊이 흐르는 정복과 우월의 바탕 위에 인간의 소유욕은 그 어느 정신도 자족을 가져다주지 못한 채 역사를 만들어 왔다. 심신이 지칠 때면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의 행보는 이미 소유와 떨어져 나아갈 수 없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떠올리고 실천하려 하지만 근본이 자유로울 수 없는 유물론적 존재에게는 나눔이 도리어 현실적이다.애플의 대명사인 스티브 잡스가 세 번째 병가를 떠난다는 뉴스와 함께 회사 주가가 곤두박질쳤다는 소식은‘잡스 리스크’라는 말로 회자됐다. 그의 유무는 이미 많은 이들의 소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이 혁명과 영감의 지도자를 대신 할 사람이 없다는 부재의 의미에서 정신과 물질의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그럼에도 나이에 비해 수척하고 늙어 보이는 그의 모습을 통해 인생이 참
전국적인 구제역과 조류독감 그리고 신종플루로 이 좁은 국토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소위 격리된 청정지역마저 곳곳이 뚫리고 많지는 않으나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도 전국에 속출하고 있다. 인간들의 식탐과 생존을 위해 사육되던 동물들이 하루아침에 살 처분되는 마당에도 우리들 음식 찌꺼기는 여전히 산처럼 쏟아지고 있다. 굳이 동물 애호가가 아니라 해도 오늘의 상황을 두고 식탁의 재앙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도대체 이 비정한 인류의 미각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의 원혼이 사무쳐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의문을 멈출 수 없다. 건강하게 방목되고 자연에서 사육될 동물들은 비좁은 공간의 스트레스와 약물에 길들여져 있고 사람들 역시 운동과 자연식 등으로 지켜야 할 건강이 수많은 병원의 치료와 처방으로 유지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렇게 시작되는 동물들의 재앙은 결국 인류를 타깃으로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지고 있다.동물묵시록은 지난 1972년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방영됐던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의 연주곡은 유명한 그리스 출신의 반젤리스가 작곡한 ‘바닷가의 작은 소녀’라는 멜로디 곡을 밀바가 독일어 가사를 넣어 부른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런데 다시 40
연초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 중순으로 가는 달력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와 일주일이 가는 것이나 혹은 한 달이 지나가는 것이나 결국은 같은 속도라고 느끼는 것이 오늘 우리 삶이다. 때로는 깊이 따지고 생각할수록 더 꼬이고 결론도 없는 인생이기에 차라리 바쁘게 지나가는 것이 정신적으로 좋을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도 언젠가 은퇴하게 되면 그간 맺힌 삶의 여가를 즐기고 누릴 요량을 꿈으로 간직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해마다 들려오는 소식들은 우리가 과연 은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한다. 특히 올해만 해도 전국으로 퍼지며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구제역과 함께 앞다퉈 올라가는 각종 생활 물가며 또한 이상 한파 등은 그렇지 않아도 움츠러든 경제에 찬바람을 더하게 한다. 실제로 우리 치과계와 가장 밀접한 건강보험 재정이 지난해에 무려 1조 2,994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올해도 역시 약 5,0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예상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최소치로 보여 그나마 1조 남짓한 적립금마저 날려버린다면 그야말로 남는 것이 없는 재정이 되어버릴 판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데는 제도적 모순으로 인한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과잉
토끼로 상징되는 2011년 신묘년 한 해가 밝았다. 크고 넓게 도는 시간의 틀이지만 사계(四季)는 어김없이 우리를 다시 한 바퀴 돌려놓으며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그래서 이제는 커다란 꿈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치과계에서 내부적 규범들이라도 제대로 지켜지고 운영되어지길 바라는 소망이 더욱 간절하다.언제부터인가 우리 동료들이 서로 적이 되기도 하고 반목의 대상이 되어버리기도 했지만 결국 치과계의 내분은 우리의 파이를 엉뚱한 곳에 잘라주는 우를 범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토끼는 보는 것만으로 평화롭고 깨끗한 느낌을 주는 동물이다. 그럼에도 이 동물은 꾀를 부린다고 묘사되는 일이 많은데 동화에서처럼 거북이와 경주하다 자만에 빠져 실패도 하고 반대로 거북이의 꼬임에 넘어가 바다 속 용왕 앞에 끌려가지만 다시 잔꾀를 내어 극적으로 빠져나와 거북이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 토끼와 거북이의 숨겨진 경주 뒷이야기가 패러디되기까지 했는데 그 내용은 토끼가 거북이의 느림을 안타깝게 여겨 일부러 경주에 져주고 비난까지 감수하며 거북이의 기를 살려주었다는 눈물겨운 토끼의 속내 이야기라
요즘 모 케이블방송에서 하는 ‘응답하라 1994’가 장안의 화제다. 1994년에 대학을 입학한 지방 출신 학생들이 한 하숙집에 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복고풍으로 잘 그려낸 드라마이다. 지금 보면 촌스럽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때는 왜들 그랬을까 하는 면도 있지만, 1994년에서 시작하여 2002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그 무렵 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이라면 자신과 드라마 속의 인물들을 오버랩해가며 몰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쩌면 즐겁고 아련한 기억들뿐 아니라 현재의 인물들을 형제보다도 더 끈끈하게 연결하는 과정을 같이 하면서 자신의 현재를 다시 한 번 짚어보는 동기가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지혜의 해였던 2013년 계사년은 가고 2014년 갑오년이 밝았다. 갑오는 60간지 중 31번째로 말 중에서도 청말띠해라고 한다. 말은 사회성이 강하고 역동을 상징하는 동물이고, 청색은 진취적인 기상을 의미한다.우리는 또다시 청색말과 같은 기대와 희망, 그리고 새로운 다짐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2013년은 우리 치과의사들에게 참으로 시련이 많은 해였다. 대부분 개원의가 경제적인 문제를 겪어야 했고, 정부의 새로운 제도와 정책에 불안했던 해이기도 하다. 공정하지 못한 공정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