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고/우물 파 물 마시고 밭 갈아 내 먹으니/임금의 도움이 내게 무엇이 있다더냐” 이것은 중국 태평성대인 요순시대의 널리 불려진 ‘격양가(擊壤歌)’의 가사이다. 아마도 요즘 한국의 많은 치과의사도 이런 노래를 간절히 부르고 싶을 것이다. 대통령이 누구이고, 협회장이 누구인지 몰라도 열심히 진료하면 병원 운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대에 살고 싶을 것이다.지난달 23일, 대의원 투표를 통해 치협의 새로운 회장단이 꾸려졌다. 김세영 당선자는 임상경험과 실무경험 그리고 추진력에서 개원의는 물론 한국 치과계를 이끌어 가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춘 인물이다. 이 시대는 협회장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 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당선자 공약 중 처음에 나오는 동네치과를 살리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공약처럼 불법덤핑 네트워크치과를 척결하는 것이 최우선순위가 될 것이다. 물론 지금 문제가 되는 몇몇 네트워크 치과가 가장 시급한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차제에 이들 네트워크가 활기를 치게 된 배경과 치과계의 체질개선이 필요한지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제방도 개미굴 때문에 무너진다고 했다. 겸손한 시각으로 보면 과거에도 있었던 몇몇 치과의사들의 비
요즘 치과의사들을 만나면 듣는 공통적인 말이 있다. 직원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서울은 조금 여유(?)가 있다지만 그래도 지하철역에서 좀 떨어졌다 싶으면 아예 전화로 위치만 묻고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나마 교통여건이 좋아 면접을 온 경우도 언제부터 근무가 가능하냐고 하면 ‘좀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라는 대답을 듣는 것이 이제는 아주 당연하단다. 지방은 아예 씨가 말라서 면접 오는 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하는 임금으로 고용한다고 한다.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2011년 치과의사 면허자는 총 26,226명이다. 2008년에 면허자 23,912명 중 현업종사자가 19,878명인 것을 비추어 추산하면 2011년 현업에 근무하는 치과의사는 22,000명으로 추산된다. 치과위생사 면허자는 2011년 기준 47,733명이다. 이 중 현업종사자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많은 치과위생사가 결혼을 전후로 현업에서 떠나는 것과 간호사의 경우 면허자의 43%가 현업에 있는 것을 고려하면 약 22,000명이 현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즉, 치과의사 1인당 치과위생사의 수는 약 1명이다. 그러나 여러 통계에 의하면 1인의 치과의사는 2.5~3.4명의 보조
의료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 중 치과의료전달체계 확립과 관계된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는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본격 시행된다. 통과된 개정안은 치과전문의제를 바탕으로 한 의료전달체계 확립, 의료인 정기 신상 신고제, 그리고 자율징계요구권이 그 요지이다. 전문과목 표방과 관련해 표방의원이 전문과목만 진료를 해야 하는 조항은 치과의료기관 전문 과목 표방금지 조항이 풀리는 2014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전문의 제도를 통하여 전문과목만 진료하는 것이 정착되면 치과에도 의료전달체계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의료전달체계가 의과의 잘못된 전달체계를 계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의과와 달리 치과는 전문의만 있었지 의료전달체계의 개념이 없다. 1차 기관과 3차 기관의 명확한 정의도 없다. 진료비 차이도 없다. 진료의 범위도 제한이 없다. 그러다 보니 수련도 인기 임상과만 지원자가 몰리고, 규모가 작은 대부분의 수련병원은 아예 인기과 수련과만 있다. 의과의 경우도 부분적으로 그렇겠지만 치과의 경우도 수련병원은 수련의 제도가 고급인력을 저가에 고용하기 위하여 활용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전문의 제도를 기초로 한 단계적 의료전달체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와 원전 사고는 일본에 큰 시련이 되고 있다. 고통받고 있는 일본 국민을 보면 눈물이 나온다. 과거사야 어찌 되었든 아시아의 많은 국가가 일본을 돕겠다고 하고, 우리나라의 민간인 모금액도 350억 원이 넘었다.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질서와 침착한 모습은 모두의 감탄과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본 국민은 정말로 각자의 자리에서 잘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언론은 이를 지휘하는 정치인의 리더십에 큰 의문을 가진다. 일본 총리는 원전지역을 헬기로 한차례 보고 간 것이 다였고, 그나마 총리가 시찰 오는 바람에 응급조치가 지연되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관료들은 매뉴얼만 뒤적이고 있어 구호물자는 아직도 원활한 전달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평온한 시절 일본 내각의 리더십은 큰 문제가 안 되었지만, 범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현 내각의 리더십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한 일본인 교수는 일본 내의 ‘제3의 개국’ 문제에 대한 논의를 국내 모 일간지에 기고하였다.시각을 돌려 우리 치과계를 보면 치협 회장에 출마하신 세 분 모두 한결같이 불법 행위를 하는 일부 네트워크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공약으로 하고 있다. 시도지
최근에 보는 드라마 중에 ‘마이더스’가 있다. 돈을 향하여 불나방처럼 돌진하는 김도현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인데, 주변인물로 김도현의 아버지 김태성이 있다. 김태성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도현과 도현의 어머니를 버리고 금광을 찾아 전국을 떠돈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김도현은 아버지 없이 자랐고, 성장해서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들은 모두 일이 잘못되어 교도소에서 만나게 되고 이들은 이곳에서 부자의 정을 느낀다.최근 서울대치과병원 관악분원 설립에 대한 목소리들이 커지며, 서울대치과병원과 치과의사들의 모습에 드라마 ‘마이더스’가 중첩되었다. 학교는 학생들을 4년 혹은 6년 동안 필요한 지식만을 가지게 하여 졸업시킨다고 끝이 아니다. 학교와 졸업생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과 같은 관계에 가깝다. 학교는 동문들이 졸업해도 그들이 개원은 잘 하고 있는지, 힘들어 하는 것은 없는지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고 또, 동문은 자신의 모교가 무엇이 어려운지 후배들에 대한 교육은 잘 되고 있는지 관심과 애정 그리고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들보고 키울 만큼 키워놓았으니 이제부터 너와 난 모르는 사람이
최근 한 동굴 탐사 모험 영화의 대사에서 주인공은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는 순간 동료들에게 냉정한 이야기를 한다. 그 대원들 전체가 죽는다 해도 당사자들에게는 큰일이겠지만 자연 앞에서는 작은 먼지가 잠깐 지나가는 것 정도라고 담담한 태도로 말한다. 인간의 존재는 실상 푸념에 가까울 정도로 보잘것없다는 것이고 신(神)도 개입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인간의 표적이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몹시 미미한 흔적일 뿐이라는 고백이다. 결국 짧고 긴 시간을 흐르며 지나는 먼지 같은 일상(日常)이 실상 인간 존재인 것이다. 설령 세상에 드러나 주목을 받아도 무수한 유전자의 하나 정도로 유구한 흐름 속에 셀 수 없는 기억을 뒤로하고 떠돌이 생을 마치고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우리가 잘 아는 노래 중에 ‘먼지가 되어’라는 곡이 있다. 요절한 김광석이 불러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가사 내용 이상으로 그 노래를 부르는 여러 가수는 제목에 심취되었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뒤집어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존재에 대해 먼지 같은 의미를 떼어내지 못하고 사는 것이고 끝내 먼지가 되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우리는 거대한 쓰나미에 맥없이 밀려가는 문명의 이기들을 보았다. 엄
이웃 나라 일본이 자연재해로 허덕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방사능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인데 재난에 처해있으면서도 도움조차 쉽지 않은 터라 고립의 장벽이 쳐진 형국이다. 서로 가깝고도 먼 나라 그리고 애증이 역사와 핏줄 속에 얽혀 편하게 대하지 못하면서도 한편 한류에 열광하고 우리는 선진의식을 못내 아쉬워한다. 설령 종교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고 과거사 잣대로 들이대 보기도 하지만 인간이란 상황의 존재이므로 결국 우리는 모두 안타까움과 탄식을 금할 수 없다. 나아가 그들이 원했던 대륙의 관문, 이 땅에서 우리는 바다 건너 멀리 인류애와 공존의 둘레로 달래며 시간의 치유를 기다릴 뿐이다. 지난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 우리는 셀 수 없는 가축들을 이 땅에 생매장시켰다. 전염 방지를 위한 극단적 조치였다고 하지만 가장 비정한 방법으로 고통스럽게 축생들의 생명을 난도질한 것이다. 말로는 자식 같다 하면서도 끔찍한 비명을 정책으로 덮어버리고 얼마의 보상금으로 잊고 돌아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구제역으로 직접 죽은 소가 몇 마리인지 의문을 갖는다면 감염의 결과와 감염의 과정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상식이 이 나라에서는 오래전에 사망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인생이 짧다지만 하염없이 길기도 하고 또 지나고 보면 일장춘몽 같아 참 어렵고도 허무하다 한다. 젊은 청춘은 불같은 정열이 앞을 가려 그 소중함을 모르지만 뒤늦은 후회로 다시 돌려놓을 수도 없다. 들의 풀과 같고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 같은 우리는 살며 예측하던 중의 한번은 반드시 영원으로 떠나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이별에 앞서 우리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경험하기도 하고 연습도 한다.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특히 치열한 이 도시의 현실에서는 언제나 작은 틈만 보여도 분리의 작업이 시작된다. 그것이 직업에서의 절망적인 퇴출이 되기도 하고 또는 식상해 버린 일상에 대한 스스로의 다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곳은 떠남이건 떠나보냄이건 간에 냉정하면서 또한 너그럽다. 그래서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는 말도 있고 정상에 있을 때 떠나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가장 어려운 선택 중의 하나는 사람이건 아니건 삶의 인연에서 끊어내고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큰 이별은 일생의 사건이므로 그나마 작은 일조차 만들지 못하면 평생 후회 아닌 후회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얼마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작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개개인들이 스스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폐쇄적 의미의 고전적 자유주의가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한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의 미명아래 여러 나라의 절대적 빈곤의 감소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이미 실패의 징후를 지구상 곳곳에서 다분히 드러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결과에 있어서도 심한 비판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이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때론 미국의 네오콘적 정치유형에 가까운 특정 분파의 한시적 자본주의로 정의되기도 한다. 특히 이런 상업주의 방식은 실제로 자본의 축적과 확대를 위해 세계 여러 국가를 공격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극대 이익을 추구하며 영향을 끼친 곳마다 국가 내에서 그리고 국가 간에도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던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의 자본 이데올로기는 도덕이 거세된 괴물같이 오직 부의 확충만을 목적으로 복지제도 마저도 먹어치우는 탐욕을 과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대표적 위험의 예로 스타벅스 카푸치노의 거품에 비교되기도 하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규모는 각 나라에 있는 이 커피매장의 숫자와 비례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음식점보다 흔한 다양한 커피전문점들의 숫자를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을 특별한 기념일처럼 들뜨게 만드는 날이다. 그렇지 않아도 명절이며 여러 챙겨할 날들에 치이며 살기도 하지만 우리 주위에 어느덧 스멀스멀 생겨나는 수많은 데이(Day)들은 일상에 꼭 효과적이지는 않는다 해도 나름 반복적인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적잖은 상업적 경제효과를 가져오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현실과 밀접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과거 특정한 날들의 의미를 전혀 기억 못하게 된다거나 혹은 그 중요성이 이런 데이들로 인해 밀려나 버린다면 결국 우리 역사와 정체성을 속이는 날로 남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에게 절대적인 애국지사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 바로 1910년 2월 14일이며 돌아가신 날이 3월 26일 인데 우리들은 발렌타인데이며 화이트데이에 빠져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도록 만들어 준 선열의 피 값을 기억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것은 일본식 발렌타인데이의 과도한 상술이라는 지적도 빼놓을 수 없다. 대의(大義)는 소인을 경멸하던 우리 선조들이 추구해온 거침없는 정신문화 유산이다.서양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
얼마 전 공중파에서 방영된 故 이태석 신부의 ‘울지마 톤즈’는 종교인 여부를 떠나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영화관에서도 지난해 9월 9일 개봉 이후 관람 인원 40만을 넘기고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살면서 영화를 통해 가장 순수하게 울 수 있다면 아마도 이 다큐만한 내용도 드물 것이다. 고인이 된 그 분의 삶 이야기 중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하게 된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지만 대신 그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었다는 말을 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예수에게 행한 것이라는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 그리고 10남매를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등이 바로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그의 죽음이 가져온 톤즈의 충격은 엄청났지만 그 영화를 보는 우리의 한 편 마음 속에서도 이해 할 수 없는 신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는 무거운 침묵의 의문이 떠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는 말이 있다. 물론 세상에는 어떤 이유에서건 또는 맹목일지라도 신을 사랑한다는 사람들로 붐빈
최근 노래 가사 속 너는 대부분 ‘니’다. ‘니’는 어느덧 친숙해져 노랫말과 방송뿐 아니라 영화 자막에서도 자연스럽게 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니’는 너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도 되지만 중국어의 ‘니(?)’ 또한 너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네가’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오래전 어렵게 국어 시험을 통해 단련된 강박적인 단어임에도 이젠 아이들의 익숙한 표현인 ‘니가’와 뒤섞여 서로 구분되지 않은 지 오래다. 오히려 ‘네가’라는 어구를 쓰게 되면 왠지 스스로 구세대를 자청하는 것 같아 도리어 ‘니가’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굳이 ‘네가’로 써야 한다는 어법상 당위성은 이미 ‘니가’라는 발음의 편의성과 젊은 세대의 창의적 흐름에 묻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최근 개원 20주년을 맞아 국어 국립원장은 규범이 언어생활을 옥죄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고 한다. 이미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보편적인데 단지 표준어라는 관점으로 관습화된 언어를 제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차라리 둘 다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고 자유롭게 말하도록 경쟁을 시키면 언젠가는 정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내음’, ‘손주’, 그리고 ‘허접’ 같은 비표준
유(有)와 무(無)는 인류 역사 이래 사람들의 가장 큰 화두가 되었지만 결국 우리의 현실에서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양분적 틀을 대표하고 있다. 먹고 사는 일이 훨씬 험했던 과거의 생존부터 오늘날 사회 복지의 개념이 정립된 나라에서의 생존에 이르기까지 양극화된 소유는 결국 생존의 문제와 연결된다. 뼛속 깊이 흐르는 정복과 우월의 바탕 위에 인간의 소유욕은 그 어느 정신도 자족을 가져다주지 못한 채 역사를 만들어 왔다. 심신이 지칠 때면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의 행보는 이미 소유와 떨어져 나아갈 수 없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떠올리고 실천하려 하지만 근본이 자유로울 수 없는 유물론적 존재에게는 나눔이 도리어 현실적이다.애플의 대명사인 스티브 잡스가 세 번째 병가를 떠난다는 뉴스와 함께 회사 주가가 곤두박질쳤다는 소식은‘잡스 리스크’라는 말로 회자됐다. 그의 유무는 이미 많은 이들의 소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이 혁명과 영감의 지도자를 대신 할 사람이 없다는 부재의 의미에서 정신과 물질의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그럼에도 나이에 비해 수척하고 늙어 보이는 그의 모습을 통해 인생이 참
전국적인 구제역과 조류독감 그리고 신종플루로 이 좁은 국토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소위 격리된 청정지역마저 곳곳이 뚫리고 많지는 않으나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도 전국에 속출하고 있다. 인간들의 식탐과 생존을 위해 사육되던 동물들이 하루아침에 살 처분되는 마당에도 우리들 음식 찌꺼기는 여전히 산처럼 쏟아지고 있다. 굳이 동물 애호가가 아니라 해도 오늘의 상황을 두고 식탁의 재앙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도대체 이 비정한 인류의 미각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의 원혼이 사무쳐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의문을 멈출 수 없다. 건강하게 방목되고 자연에서 사육될 동물들은 비좁은 공간의 스트레스와 약물에 길들여져 있고 사람들 역시 운동과 자연식 등으로 지켜야 할 건강이 수많은 병원의 치료와 처방으로 유지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렇게 시작되는 동물들의 재앙은 결국 인류를 타깃으로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지고 있다.동물묵시록은 지난 1972년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방영됐던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의 연주곡은 유명한 그리스 출신의 반젤리스가 작곡한 ‘바닷가의 작은 소녀’라는 멜로디 곡을 밀바가 독일어 가사를 넣어 부른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런데 다시 40
연초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 중순으로 가는 달력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와 일주일이 가는 것이나 혹은 한 달이 지나가는 것이나 결국은 같은 속도라고 느끼는 것이 오늘 우리 삶이다. 때로는 깊이 따지고 생각할수록 더 꼬이고 결론도 없는 인생이기에 차라리 바쁘게 지나가는 것이 정신적으로 좋을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도 언젠가 은퇴하게 되면 그간 맺힌 삶의 여가를 즐기고 누릴 요량을 꿈으로 간직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해마다 들려오는 소식들은 우리가 과연 은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한다. 특히 올해만 해도 전국으로 퍼지며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구제역과 함께 앞다퉈 올라가는 각종 생활 물가며 또한 이상 한파 등은 그렇지 않아도 움츠러든 경제에 찬바람을 더하게 한다. 실제로 우리 치과계와 가장 밀접한 건강보험 재정이 지난해에 무려 1조 2,994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올해도 역시 약 5,0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예상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최소치로 보여 그나마 1조 남짓한 적립금마저 날려버린다면 그야말로 남는 것이 없는 재정이 되어버릴 판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데는 제도적 모순으로 인한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과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