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여는 교실 운영위원장, 평양 겨레하나치과병원사업단 운영위원장, 시사인천 이사, 인천 사람과 문화 운영이사, 건강과 나눔 운영이사 등 수 많은 직책들이 정갑천 원장을 수식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으니 이처럼 많은 직책이 생겼다는 정갑천 원장은 “치과의사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치과의사란 나누는 직업정갑천 원장은 학생 때부터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편이 돼 주었다. 치과의사가 되어서도 어려운 이들을 잊지 않고 찾기로 스스로 다짐했고 20년 가까이 그 다짐을 지켜오고 있다. 정 원장은 “어려운 이웃보다 많은 것을 받았고 그것을 돌려주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치과의사의 사회적 위치, 치의학지식 등은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고 치과의사로 살아가면서 늘상하는 진료도 결국은 사회로부터 부여받는 사명이라며 치과의사는 사회의 도움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는 소신을 전했다. 정갑천 원장은 “치과의사는 자신의 능력과 경제적 여건을 사회와 나눠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들려 올 때마다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정갑천 원장은 “나에게는
지난 6일 서대문구에 위치한 강대건치과에는 한센인들이 모여들었다. 한평생 한센인의 벗이자 대부로 살아온 강대건 원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다. 가톨릭 한센인들의 모임인 한국가톨릭 자조회(自助會)가 감사패를 전달한다는 소식에 강대건 원장과 인연을 맺은 한센인들이 전국에서 모인 것이다. 치과에서 만난 한센인들은 “평소 치과진료는 생각지도 못한 우리들에게는 크나큰 은인”이라고 입을 모았다.오롯이 한센인을 위한 주말강대건 원장과 한센인과의 인연은 34년을 거슬러 올라간 1979년부터 시작됐다. 가톨릭치과의사회 회장을 맡고 있던 강대건 원장은 당시 치과기공사의 모임인 녹야회의 진료봉사에 함께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포천 농축단지(음성 나환자정착촌)로 떠났다. 도착한 그곳은 참담했다. 찜통 같이 더운 날씨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판잣집에 살고 있던 한센인은 오랫동안 진료를 받지 못해 구강상태가 엉망이었다. 참담한 현실에 넋을 놓고 있던 강대건 원장의 눈에 봉사에 열중하고 있는 녹야회 회원들이 보였다. 강대건 원장은 ‘이렇게 더운 날 이 사람들은 돈을 주지도 않는데 이렇게 열심이구나. 나는 누군가를 위해 적극적으로 살아본 적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22년 역사의 치과계 대표 문화단체 ‘덴탈코러스’가 변화를 꾀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회장으로 선출된 임상수 회장이 있다. 임상수 회장은 덴탈코러스 2기 출신으로 창단 이후 처음으로 창립멤버가 아닌 회원이 회장을 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임상수 회장을 위시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덴탈코러스를 만나봤다.신임회장으로서 포부를 밝힌다면?지금까지 역대 회장들은 창립 멤버 출신으로 의무감이 굉장히 강했다. 창립 멤버가 아니어서 그런 부담감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맡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회장을 역임했던 선배들을 의식할 수 밖에 없고, 변화를 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창단 후 처음으로 비창립 멤버가 회장을 맡게 된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기존과는 다르게 색깔을 바꿔보고자 한다. 어떤 측면에서 변화를 줄 계획인가?덴탈코러스는 22년 동안 활동을 해오면서 정형화된 패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음악회를 개최하면,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가 돼야 한다든지, 반드시 몇 명 이상이 무대에 올라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개원환경이 점차 어려워지고, 활동하는 회원들도 줄면서 그에 맞춰 덴탈코러스
매달 365명의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자 하는 기업이 있다. 치과 교정재료 전문 쇼핑몰 오소마트다. 오소마트의 김기수 대표는 쇼핑몰을 통해 거둔 수익의 50%를 아프리카 아이들을 후원하는 데 사용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세우고 있다. 현재 오소마트에서 돕고 있는 아이는 9명이지만, 쇼핑몰을 더욱 활성화시켜 목표로 삼은 365명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싶다는 김기수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아픔을 나누기 위한 봉사김기수 대표의 후원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김기수 대표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한 아이에게 매달 3만원씩 후원하는 것으로 봉사활동에 발을 내딛었다.“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결단이 필요했죠. 결단을 한 뒤부터 지금껏 봉사와 후원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처음 후원을 시작한 우간다의 아이는 어느덧 고등학생이 됐습니다.”이렇게 시작된 후원 활동은 아프리카와 방글라데시, 인도 등을 포함해 현재 9명으로 늘어났다. 후원금도 처음 3만원에서 4만5,000원으로 올라 지금은 약 4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매달 지원하고 있다. 한
인천에 위치한 장애인 학교인 연일학교. 그곳에는 1999년 치과보건실을 만들고 15년간 매일 출근하는 치과의사가 있다. 개원의로 40년을 보낸 우광균 실장은 연일학교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매일 아이들을 만나고 치료하는 연수동 슈바이처 우광균 실장을 만나봤다.장애 아이를 위한 제2 인생군의관을 예편하고 치과를 개원한 1960년, 치과가 자리를 잡자 우광균 실장은 봉사가 필요한 곳을 찾았다. 치과 하나 없던 덕적도에 1년에 1주일씩 진료봉사를 나가던 우광균 실장은 그곳에서 덕적도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최분도 신부를 만나 봉사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됐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1999년 우광균 실장은 40여년 가까이 운영해 오던 ‘우치과’를 정리하고, 보유하고 있던 수억여원의 치과기자재를 연일학교에 기증했다.이후 휴일과 방학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15년 넘게 이곳에서 아이들의 치아를 관리해 주고 있다. ‘실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순수 봉사직이다.우광균 실장은 “처음 이곳에 와서 아이들을 치료할 때 대화라고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며 “진료실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도 않고 앉혀놓아도 마구잡이로 몸부림쳐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듯 했다”고 회상
서울시치과의사회 제62차 대의원총회에서 동대문구 변영남 회원(성신치과의원)이 올해의 ‘공로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구회, 지부, 치협 회무에 적극 참여해온 것은 물론, 20년 넘게 꾸준히 이어온 진료봉사로 치과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치과계의 중진, 어르신으로서 동료 선후배들과 소통해온 변영남 회원을 만나 그의 40년 개원의 생활을 되돌아봤다. ‘공로대상’을 수상한 소감은?부족함이 많은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 부끄러움이 앞선다. 작은 일이지만 열심히, 성의를 다해, 지속적으로 해온 것에 대해 인정을 해준 것으로 생각된다. 한 일에 비해 큰 상을 주신 데 대해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 치과계를 위한 37년 회무,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치협 치무이사로 활동하던 1987년, ‘한국인 치과질환 실태조사’를 직접 진행하고, 기공소 실태조사를 통해 당시 횡행하던 돌팔이 척결에 도움이 됐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기공소를 개설하고도 치과와 거래실적이 한 건도 없는 곳도 있다는 실태가 파악되면서 향후 ‘2282’ 사업을 진행하는 시초가 됐다. 또한 치협 공보이사 시절, 필리핀 현지답사를 통해 ‘필리핀 치과대학 교육현황’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정부와 언론에 보고했던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친구, 그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이가 있으면 해외도 멀다 하지 않고 떠나는 치과의사. 통일부 장관 표창, 국무총리 남북관계발전공로민간포상에 이어 2013년 제11회 서울시치과의사회 치과의료 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신덕재 원장을 만났다.어려운 이를 찾아 떠나는 길대학시절부터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 봉사를 하고 친구가 돼 이야기를 들어 주던 신덕재 원장은 1997년 IMF 이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자 1999년 봉사와 나눔을 함께 할 치과의사들과 함께 열린치과의사회(이하 열치)를 조직했다.신덕재 원장은 열치 회원들과 급격히 늘어난 노숙자를 위해 노숙자쉼터인 자유의 집에 치과진료소를 만들고 본격적인 봉사를 시작했다. 자유의 집 제1진료소를 시작으로 노인복지센터 제2진료소, 하나원 제3진료소, 중국동포의집 제4진료소, 하나원 분원 제5진료소, 충분 예산군 제6진료소 등 여러 곳의 진료소에서 본격적인 봉사를 전개했다.“봉사는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신덕재 원장은 봉사를 통해서 얻는 것이 더 많다고 한다. “하나를 나누면 둘이 돼 돌아오고, 베풀면 더 큰 대가를 받는다”며 “봉사는 결코 희생이
“많은 이사들과 운영위원들이 인정을 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활동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고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닙니다.” 치과계의 대표적인 봉사단체인 열린치과의사회(이하 열치)에서 매년 시상하는 봉사대상을 두고 한 김성문 회장의 말이다. 올해 열치 봉사대상의 주인공은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믿음치과기공소 이용기 소장이다. 그를 통해 봉사하는 즐거움을 느껴보자. “제가 받아도 되는 상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보다도 더 오랜 기간, 그리고 더 열심히 봉사에 임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수상하게 돼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더 열심히 활동한 뒤 받아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평소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줄곧 갖고 있었다는 이용기 소장은 우연치 않게 열치와 연이 닿아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봉사활동을 시작한 지는 이제 7~8년이 돼 갑니다.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는데, 일정이 바빠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열치와 인연을 맺게 됐죠. 열치에 와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활동하지 못했던 제가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다들 바쁘신 와중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셨거든요. 그 분들을 통해서 오히려
치과 한편에 기타와 피아노가 있고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치과의사, ‘영 뮤지션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그들이 외로운 사람을 찾아 공연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치과의사, 세상의 외톨이를 보듬어 안는 허그월드를 이끌고 있는 서성원 원장을 만났다.행복을 나누는 봉사 어린 시절 화전민의 생활이 궁금해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서성원 원장은 모두가 일 나간 집에서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을 봤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마주친 그 눈빛을 잊지 못해 외로운 이들을 위해 꾸준한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좀 더 체계적이고 더 큰 도움을 주기 위해 ‘허그월드’를 만들었다. 허그월드는 어려운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고 그들과 함께 은둔형 외톨이를 사회로 복귀시키는 활동을 하는 단체다. 허그월드는 ‘영 뮤지션 네트워트’를 만들어 젊은 음악인에게 힘을 주고 연습공간과 공연할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서 원장의 도움을 받은 젊은 음악인들은 자선공연 수익금을 사회 소외계층 지원사업에 기부하고, 소외받은 이들을 세상으로 이끌기 위해 직접 찾아가 공연을 하면서 그들이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소외받은 이들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그들이 받은 상처를 치
치과의사 12명, 치과위생사 20명, 치위생과 학생 25명, 치과기공사 4명,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덴탈캠프는 범치과계 종사자가 함께 하는 작은 치과계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캠프’를 만들고 소풍 가는 마음으로 봉사를 떠난다는 덴탈캠프 최한선 원장을 만났다.장애인, 닫힌 문을 열기까지 평생 봉사활동을 해온 대부(代父)를 보면서 ‘나도 봉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는 최한선 원장.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다 지난해부터 70여명이 함께하는 ‘덴탈캠프’를 이끌고 있다. 덴탈캠프는 소외된 장애인에게 완벽한 저작기능 회복을 선물하겠다는 목표로 2004년 설립됐다.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시설에 ‘캠프’라 불리는 치과진료실을 만들고 시설에 있는 모든 장애인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 방문치료를 이어간다. 충치치료나 발치뿐 아니라 의치, 임플란트까지, 완전한 치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더 이상 치료할 것이 없을 때까지 방문 진료한다는 최한선 원장은 “많은 곳을 진료하기보다 한곳이라도 확실하고 완벽한 진료를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덴탈캠프 설립초기 오히려 시설 측에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여주기식 봉사활동이 아닌가 하는 경계심 때문에 봉사할
서울특별시 중랑구에 위치한 신내노인요양원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중랑구에서 개원하고 있는 허훈 원장을 비롯한 7명의 치과의사다. 2004년부터 시작된 발길은 올해로 10년째 꾸준한 진료봉사로 이어지고 있다. 10년 동안 봉사활동을 했지만 봉사팀 이름도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그저 나누고 베푸는 것에 만족해할 뿐. 중랑구회 신내노인요양원 봉사팀을 이끌고 있는 허훈 원장을 만나봤다.빈 치과진료실에 퍼진 사랑의 온기신내노인요양원은 설립 때부터 요양원 어르신들을 위한 치과진료실이 마련됐다. 치과의사인 박정숙 수녀가 설립 초기 신내노인요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았는데 그가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치과진료실은 텅 비게 됐다. 당시 중랑구치과의사회 회장이었던 허훈 원장은 신내요양원을 직접 둘러보고“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많아 방문 진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허훈 원장을 필두로 김윤만·선민권·안병주·정현구·한재범·허준호 원장이 2004년부터 봉사를 하고 있다.한동안 비어있던 치과진료실은 매주 토요일마다 환자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봉사에 나선 원장들은 “우리지역에 비어있는 치과진료실이 있고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있는데 직접 찾아 봉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소록도에는 19년째 한센인들의 의사이자 친구로 살아온 이가 있다. 환자구역과 직원구역으로 구별돼 있는 소록도에서 한센인 마을에 놀러가 그들과 스스럼없이 밥상에 함께 앉아 밥을 먹고,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한다. 자신이 봉사하고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다. 소록도의 ‘재롱둥이’라 불리는 국립소록도병원 오동찬 의료부장의 얘기를 해본다.소록도의 가족으로… 1995년 공중보건의로 처음 방문해 19년째 소록도를 지키고 있는 오동찬 부장은 “소록도는 나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처음 소록도에 왔을 때는 진료나 수술을 받고 “감사합니다” 대신 “수고하시겠네요”라고 하는 환자들이 의아했다. 이 말이 정말 듣기 싫었던 오동찬 부장은 환자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1년만 있다 의사들이 떠나니 정을 주면 마음에 상처만 받기 때문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을 주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던 한센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밥도 먹고, 집안일도 돕고, 그들 집에서 잠도 자면서 의사와 환자 이상의 관계로 지냈다. 오동찬 부장은 “소록도는 나의 가족들(한센인들)이 있는, 나의 삶터다. 한센인은 찾아오는 가족이 있나? 가보고 싶은 곳에 갈 수가 있나?
연세대학교는 국내 대표적인 개신교 종교재단 사학이다. 특히 연세의료원을 중심으로 하는 의료파트는 종교적인 ‘미션’을 완수해 나간다는 사명감으로 무장돼 있는 듯하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진료봉사 동아리 ‘ESSEL’(에셀)은 이 같은 학풍을 가장 잘 이어나가고 있는 동아리 중 하나다. 지난 1971년 이웃한 학교인 이화여대 간호대학 학생들과 연세치대생들이 다락방 전도협회에서 첫 모임을 가지고 창단된 에셀은 올해로 창단 42주년을 맞았다. 특히 에셀은 지난 1993년 필리핀 딸락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지난해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해외진료봉사활동을 진행해왔다. 스무번의 해외진료봉사활동을 진행하는 동안 한해도 빠지지 않고 에셀을 이끈 인물이 있다. 바로 백형선 지도교수(연세치대 교정과)다. 20년을 한결 같이 봉사자의 자리를 지켜온 백 교수의 공로는 지난해 연세치대동문회(회장 정세용)의 ‘자랑스런 연아인 상’ 수상으로 치하됐다. 10명에서 40명으로 늘어난 봉사단백형선 교수는 연세치대 및 병원 내 주요보직을 지냈을 뿐 아니라 대한치과교정학회장 등 치의학계에서 굵직한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해 왔다. 백 교수가 학교 내에서나 치의학계에서나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
“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꼭 소개해주세요” 얼마 전 기자는 한 통의 기분 좋은 제보전화를 받았다. 반모임에서 우연히 전해들은 이야기가 오래도록 가슴을 온기로 채워주고 있다고. 그의 이야기를 통해 각박한 치과계에 훈훈함을 나눠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절친’으로 알려진 동료 선후배 치과의사들도 잘 알지 못했던 그의 남다른 가족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함께 하는 일상오늘의 주인공 김재형 원장은 일곱 아이와 함께 하는 대가족의 아버지다. 장성한 두 자녀를 서울에 두고 주말이면 양평의 일곱 아이를 찾아 나서는 두집살림(?)을 10년째 하고 있다. 김재형 원장은 지난 2004년 양평에 집을 지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과 함께 지어진 양평 집은 ‘위탁양육’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고아가 된 세 살 난 형준이가 처음 이곳을 찾은 지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사이 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이혼 등으로 방기된 아이들이 하나 둘 모였고, 어엿한 대가족을 이뤘다. 보육기관에서 위탁받은 아이들, 어린 나이에 남모를 상처를 키웠을 아이들은 가슴으로 낳은 엄마 아빠와 새로운 인연의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30대 원장으로 이재일 교수(구강병리학교실)가 선임됐다. 이재일 신임 원장은 지난달 28일부터 2년간의 임기를 시작했다. 역대 최연소 대학원장으로 손꼽히는 이재일 원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그만의 ‘젊은’ 포부를 밝혔다.신임 원장으로써 포부를 밝혀준다면?서울대치의학대학원이 외형적인 발전을 넘어서, 화합과 소통을 기반으로 한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평소에도 인재양성을 통한 학교발전이 사회발전을 견인한다고 생각해왔다. 세계적인 수준의 우수한 교원들의 능력을 포함해 우리 사회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겠다. 대학원장으로써 소통과 귀기울임으로 연구인력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세계 수준의 연구 업적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한편, 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성과를 사회에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현재까지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재평가해 좀 더 객관적으로 사업우선 순위를 결정하겠다.관악에 설립될 첨단교육연구복합단지 운용계획은?2014년 완공예정인 첨단교육연구복합단지는 작은 규모의 캠퍼스라고 할 수 있다. 관악 첨단교육연구복합단지는 학교발전의 새로운 원동력이자, 새로운 미래의 디딤돌이 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