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와 물을 이용하여 투명하게 만들고 주변을 비추어 기존의 관념을 깨는 뒤집힌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들의 작품을 대하면 저절로 그들이 창조한 공간에 빠지게 된다. 일본 센다이와 아키타에서 새로운 현상학적 경험을 해본다.
투명성을 이용한 현상학적 경계 흐리기
일본 동북지역 최대 도시인 센다이지만 시내는 생각보다 작다. 걸어 다니다 보면 투명한 유리박스가 눈에 띈다. 현대건축의 한 획을 그었다는 그 유명한 도요 이토(Toyo Ito)의 센다이 미디어테크(Sendai Mediatheque)1)다. 건축 입면에 사용한 유리가 주변의 모든 거리풍경을 반사해서 자신은 아무것도 없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는 듯하다. 또 유리가 너무나 투명해서 외부의 거리와 미술관 내부가 마치 경계 없이 연속된 공간같이 느껴진다. 건축물의 외피가 경계를 흐리게 함으로써 공간의 시각적 확장이 일어난다. 을씨년스런 날씨의 하늘 속 구름과 겨울날 앙상한 가로수 가지들이 현상학적 분위기를 극대화한다[그림 1].
기둥마저 잘게 쪼개기
센다이 미디어테크 내부로 들어가면 외부와는 또 다른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로비(Lobby)는 텅 빈 채로 안내와 카페만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입구에 가까이 있는 계단은 유리박스 안에 담겨 있다. 그리고 반대쪽 엘리베이터도 원통형 철골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기능에 꼭 필요한 계단 등 건물 코어 빼고 나머지는 빈 공간. 그리고 건물 내부에 있어야 할 우리 눈에 익숙한 기둥이 안 보인다. 근대건축의 돔-이노(Dom-ino)2) 이후 건축에서 기둥은 절대적이었다. 커다란 기둥 대신 기둥을 잘게 쪼개서 다른 프로그램이나 실을 만드는 벽으로 사용해서 마치 기둥이 없는 듯한 건물을 만들었다. 외부에서 내부로의 투명성은 이런 내부 디자인으로 연결되어 현상학적 공간을 확장한다[그림 2].
죽음과 추모의 공간도 현상학적으로…
센다이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걷다 보면 히로세(Hirose) 강 건너 삼나무가 우거진 즈이호덴(Zhuihoden Shrine)3)에 갈 수 있다. 센다이번(Sendai Domain)의 초대 번주로서 지역 산업, 경제, 문화를 발전시킨 다테 마사무네의 묘, 사당이다. 큰 기대 없이 산책 삼아 간 곳인데, 그곳의 사당들은 자연 속에 숨겨진 검은색과 황금색, 그리고 형형색색의 단청을 이용하여 세련되면서도 아름다운 모모야마 양식의 예술작품들이다. 죽음을 애도하는 비통의 공간에 건축을 이용하여 찬란한 아름다움의 노래처럼 현상학적 분위기를 그려냈다. 어디선가 L'Hymne a l'amour (사랑의 찬가)4)가 들려오는 듯하다[그림 3].
공간에 유머와 즐거움을 불어넣다
부풀려진 소재를 이용하여 특유의 유머 감각과 남미의 정서를 표현하는 콜롬비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Angulo). 전 세계 유명한 미술관이나 도시 공공 공간에 작품들이 있어 여행하면서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가 많다. 미야기 미술관(The Miyagi Museum of Art)5) 내외부를 감상하면서 다니는데 미술관 뒤쪽 눈에 띄지 않는 정원 한쪽에 있는 그의 조각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 겪은 센다이의 무거운 철학적 분위기를 다 잊고 웃음이 절로 난다. 삶이 너무나 진지해서 그 삶을 심각하게 대하는 것보다 웃음으로 여유를 찾으라고 필자의 마음을 위로한다[그림 4].
내려다보이는 하늘-신이 된 듯한 체험
센다이에서 북쪽으로 4시간 거리 아키타. 이곳은 이누(Inu) 개, 쌀과 사케, 흰 눈으로 유명하다. 작은 도시라 많은 사람이 방문하지는 않지만, 아키타 현립 미술관(Akita Museum of Art)6)은 하늘을 내려다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아키타 미술관은 입구, 로비, 연결 내부 브리지 등도 좋지만 가장 좋은 공간은 2층 카페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1층 옥상 수공간이다. 외부에서는 수공간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데 내부카페에서 바라보는 수공간에는 뒤집힌 하늘이 내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건너편 쿠보타 성터(Kubota Castle)도 보인다. 소도시 아키타에서는 여유로움을 즐기면서 철학적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진실은 내 앞에 있는데 너무나 작고 뒤집혀있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그림 5].
※주석
1. https://www.smt.jp/en/
2. https://blog.naver.com/minimalarchitects/221116738760
기존의 내력벽으로 하중을 해결했던 것을 기둥을 이용하여 하중을 해결하고 벽체를 자유롭게 하여 다양한 평면구성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근대건축의 대가 르 코르뷔지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현대건축은 기둥 중심의 돔-이노의 개념을 외피나 캔틸레버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바꾸고 있다.
3. https://www.zuihoden.com/ko/
4. https://www.youtube.com/watch?v=QvHph2zrMrA
5. https://www.pref.miyagi.jp/site/museum-en/
6. http://common.pref.akita.lg.jp/art-museum/">https://web.archive.org/web/20131022150025/http://common.pref.akita.lg.jp/art-museum/